"푸틴에 푹 빠진 트럼프…협력개념 믿지않는 사람" [북스&]

■메르켈 전 獨총리 자서전 출간
사상수업 들으며 물리학도 길 걷다
통일 다음날 시민단체서 기회 잡아
자신만의 콘텐츠로 총리까지 올라
'유럽연합서 난민수용' 가장 인상적
30여년 정치 인생 솔직하게 담아



앙겔라 메르켈이 1970년대 대학생 시절 스위스로 여행 중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길사





“나는 완전히 새로운 기적을 만나 옛 것에서 벗어나 새롭게 펼쳐나갈 거야.” (힐데가르프 크네프의 ‘나를 위해 붉은 장미 비가 내릴 거야’ 중)


2021년 12월 독일 베를린의 국방부 청사.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요르크 행진곡’과 함께 의장대 행진이 시작된 가운데 이어진 곡은 ‘나를 위해 붉은 장미 비가 내릴 거야’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직접 고른 곡이었다. 곡의 가사는 2005년 갓 취임한 그가 ‘어젠다 2010 개혁’을 둘러싸고 목소리를 냈던 연설과 한데 어우러졌다. “더 많은 자유에 도전합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뜻밖의 선물은 자유였습니다. 동독에서 정년 퇴직 전에 자유라는 선물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난 26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32국에서 동시 출간된 메르켈 전 총리의 자서전 ‘자유’는 동독 시민이었던 메르켈의 자유를 향한 여정을 담고 있다.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개척 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 생후 6주째 동독으로 이주해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템플린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그가 가장 기다렸던 순간은 함부르크에 사는 이모가 보내준 소포를 뜯는 때였다. “서쪽 냄새가 나”하며 뜯은 상자에서는 좋은 비누나 고급 커피의 향이 느껴졌다. 반면 그에게 동독은 세제나 왁스, 테레빈유의 향이 지배적이었고 색깔로는 화려한 원색은 어디에도 없는 무미건조함 자체였다. 그가 화려한 색상의 재킷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게 된 것은 동독의 일상에서 놓쳤던 강렬한 색상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35세의 나이로 정치 세계에 입문하기 전 메르켈이 물리학자였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동독에서는 모든 것을 예측한 대로 살아야 할 뿐 선택지의 자유는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동독 정부에게 사상적 불온한 존재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목사의 자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간신히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에 취직했지만 매달 ‘레닌-마르크스 사상 수업(ML)’을 들어야 했고 스스로도 검열을 꾸준히 해야 했다. 언제 누군가에 찍혀 미래가 박탈당할지 모르는 삶이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 막 스물 다섯이 된 메르켈의 머릿속을 지배한 질문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은 그로부터 십 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찾아왔다. 1989년 11월 지체 없는 여행 자유화가 선언된 날 그가 가족에게 처음 한 말은 이랬다. “이제 우리는 서베를린의 켐핀스키 호텔에서 굴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됐어요.” 메르켈은 자신을 옭아매던 사슬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부터 그는 과학 아카데미가 아니라 시민단체 ‘민주주의 각성’에 출근했다. 체계가 없던 조직이다 보니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볼프강 슈누르 당대표가 같은 시간 대 약속이 중복돼 어느 것을 챙겨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메르켈이 말했다. “기자를 만나셔야 합니다.” 그 순간 메르켈은 언론 담당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이어 새 정부에서도 정부 부대변인을 맡으며 메르켈은 존재감을 키워갔다.


보통 접두사에 ‘부(副)’가 붙는 역할은 족쇄가 되기 쉽다. 색채를 발휘하기도 어려운 데다 무게감을 갖게 돼 자칫 그늘 속에서 콘텐츠도 색깔도 없이 신선한 인물이라는 평가에서는 멀어진다. 하지만 메르켈은 헬무트 콜 기민당 대표 체제의 부대표를 맡았을 때도 유명무실한 부대표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는 정치인이라면 자유가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2005년 메르켈이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총리가 된 후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2015년 유럽연합에서 함께 난민을 수용하기로 한 것을 꼽는다. 유럽연합의 연대와 책임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사건은 2022년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자신을 비롯한 유럽연합의 수반들이 꾸준히 두 나라간 협상을 중재했지만 팬데믹 이후 손을 놓게 된 것이 비극으로 이어졌다.



/사진 제공=한길사


함께 했던 정치인들에 대한 평도 흥미롭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두고는 ‘전략과 전술면에서 비슷한 사고를 했다’고 평가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항상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언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우 “항상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으려 애쓰고 남들을 기다리게 함으로써 존재감을 부각시켰다”며 “유치하거나 졸렬하다고 고개를 저을 수는 있었지만 러시아를 지도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 “푸틴에게 푹 빠진 듯 했다”며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사람으로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물리학자이자 실용주의자인 메르켈의 성품은 자서전에서도 드러난다. 무심하고 담담한 어투 속에 최대한 인과관계를 사실적으로 드러내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2024년 웨일즈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2퍼센트 목표에 대한 논쟁 등 때로는 자책과 자신의 실수에 대한 언급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항상’ ‘일관적으로’ ‘절대’ 등은 지양했다. 30여년의 정치 인생의 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치며 그는 이 같이 말한다. 내 속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자유라고. 760쪽. 3만8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