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새끼 밴 누렁이는 죽지도 못했다'…안성시 폭설 피해 현장 가보니

최대 70cm 기록적 폭설에 안성 축산농가 등 괴멸적 피해
복구 작업 일부 시작했지만 한계 뚜렷…정부차원 지원 절실
안성시, 복구에 행정력 집중…정부에 특별재난구역 지정 요청 계획

1일 오후 폭설로 축사가 무너진 경기 안성시 양성면 추곡리 A축산 복구현장에서 신모 대표가 척추가 부러져 헐떡이는 소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20개월 된 한우 누렁이는 나흘 째 축사 지붕에 깔려있었다. 지난 11월28일 오전 11시께 전날부터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경기 안성시 양성면 추곡리 A축산 지붕 600여 평이 무너졌다. 누렁이를 비롯해 한우 10여 마리가 그때 깔렸다. 12월1일 오전 날씨가 풀리고 길이 뚫리자 포클레인이 들어와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철제 패널을 들어낼 때마다 짓눌린 소들의 사체가 드러났다. 누렁이는 축사 가장자리에서 모로 누운 채 발견됐다. 눈과 축분이 뒤섞인 진흙탕 속에 반 쯤 파묻힌 채였다. 기자가 다가가자 귀를 쫑긋 세웠다. A축산 신모(52) 대표는 누렁이의 불룩한 배를 가리켰다. 새끼를 배고 있었다. 척추가 부러져 일어설 수 없다고 했다. 살리고 싶지만 끌어낼 방도가 없다고 했다. 나흘 동안의 생존은 기적이지만 동시에 비극이었다. 신 대표도, 소도 함께 가쁜 한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신 대표는 "서울서 직장 다니다 2005년부터 아버지 일을 물려받았다"며 "소값이 떨어져 사육두수를 줄여 80두 정도를 키웠는데 이번 붕괴로 십 여 마리가 압사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축사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지붕 위 눈을 치우고 철제 빔을 괴고 나서야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 대표는 "철거도 철거지만 눈이 축분과 섞여 폐기물처리도 보통 일이 아니다"며 "축사를 다시 세우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1일 오후 경기 안성시 양성면 추곡리 A축산 복구현장에서 신모 대표가 폭설 피해로 무너진 축사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인근 마을 조일리의 60대 김모(여)씨는 "이 쪽 동네 축산농가는 절반 가까이 폭설 피해를 입었다"며 "다들 빚내서 소 키우는 사람들이다. 신 대표 같은 젊은 사람이 가업 잇겠다고 왔는데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런 눈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적설량이 금광면 쪽이 70cm라고 하는데 이곳도 그 못지않다"고 말했다.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 떨어진 미산리 B축산도 피해가 컸다. 이번 폭설로 전체 축사 중 3분의 1가량인 1000평 정도가 회복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출하가 끝난 축사가 무너져 소가 죽거나 다치지는 않았다.


이천우(73) 대표는 "300두 정도 키우다 소값폭락으로 120두 정도로 줄인 상태였다. 11월28일 오전 8시 제설 작업 중 천정이 무너졌다. 안쪽부터 천천히 무너져서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아들 이상구(34)씨는 "요즘은 우사 짓는데 평당 80만원이 들어간다"며 "인건비, 자재비까지 합하면 대충 5~6억 원 복구비용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40년 업력의 아버지 뒤를 이어 10년 째 소를 키우고 있지만 당장 대출금 걱정이 앞섰다. 그는 "축협에 시설, 사료 등을 위래 8억 정도 대출 받았는데 분기별로 이자를 내야 한다"며 "복구가 되기 전까지 2~3개월 놀아야 하는 상황인데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천우 대표는 "70평생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양성면 이장단 협의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 대표는 이날 저녁 이장들과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고 했다. 자신은 보험 가입이 돼 그나마 근심이 덜하지만 일대 축산농가 열에 아홉은 무보험 상태여서 대책마련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안성시 관내 축산농가는 1900여 곳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의 4%, 경기도 전체의 약 15%에 해당한다.



1일 오후 경기 안성시 대덕면 미산리 B축산 지붕이 폭설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축사를 짓누르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피해는 대덕면 진현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럭셔리다육 유혜경(61·여) 대표는 1200평 넓이의 비닐하우스 중심부가 무너지는 피해를 입고 일가친척들과 함께 다육 식물들을 이사 시키고 있었다. 유 대표는 "1차 피해(구조물 붕괴)도 피해지만 다육식물은 영하로 떨어지면 죽는다. 즉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다행히 지인의 용인 남사 비닐하우스가 비어 있다고 해서 지금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청년창업농업 대출을 신청해 고향인 안성에서 3년 째 다육식물을 재배하고 있다는 그는 사고 전까지만 해도 연간 수억 원대 고수익을 올리는 원예농업인으로서 자부심이 컸다. 하지만 복구를 생각하니 이제 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그는 "전체 골조가 상했다. 비닐까지 다 철거해 재시공해야 하는데 시설설치로만 7억 원 들 것 같다. 철거비와 재시공까지 감안하면 1.5배 든다고 한다. 농작물 피해로 3~5개월은 놀아야 한다. 식물은 보상이 안 된다고 안다. 대출이자도 걱정이다. 연 600만원 정도인데 곧 원금상환할 때가 도래한다"고 말했다.



1일 오후 경기 안성시 대덕면 진현리 럭셔리다육에서 농장 관계자들이 폭설로 무너진 비닐하우스에서 다육식물을 옮기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인근 토현리에서 벼농사를 짓는 배모(73·여) 씨는 폭설 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쳐진다고 했다. 뇌경색으로 몸저 누운 남편 박용주(78)씨의 곁에서 이틀 밤 공포에 떨어야 했다. 눈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무 부러지는 소리로 폭설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28일 아침에 무릎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섰는데 장화 속에 눈이 들어왔다”며 “그래도 어쩌겠나 가봐야지”라고 말했다. 배씨는 눈앞에서 200평 남짓한 못자리 상자 제조창이 천천히 주저앉는 것을 지켜봤다.


1일 낮 12시부터 3시까지 약 3시간 동안 기자가 양성면과 대덕면 일대에서 눈으로 확인한 폭설 피해 농가들은 총 10여 곳.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하얀 눈밭 속에서 피해 농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피해액은 적게는 수백 만 원대에서 많게는 7억 원대로 추산됐다. 재산피해도 피해지만 정신적 타격이 더 커 보였다. 안성시가 전날까지 집계한 축산시설 등 사유시설 피해만 1000여 건에 달한다. 피해액은 약 352억 원으로 잠정 예측했지만 쌓인 눈이 치워지고 고립된 마을의 통행이 재개되면서 실제 피해액은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 없는 피해에 안성시는 정부에 특별재난구역 지정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도 이날 피해 현장을 찾아 김보라 안성시장으로부터 피해 현황 브리핑을 청취하고 긍정적 답변을 내놓은 상태다. 김보라 시장은 “안성은 예산 및 장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복구작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정부 및 관계 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피해를 입은 분들이 신속한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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