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IDC 분산, 기업은 수도권 선호…"혐오시설 낙인부터 해소를"

[멀어지는 IDC 허브]
<상> 수요 폭증에도 '데이터 댐' 태부족
韓, ICT 인프라·입지 강점 불구
전력규제 등 막혀 빅테크들 외면
韓 보유 GPU 수, 메타 1% 수준
산업특화 sLLM 구축도 갈길 멀어
AI·6G發 2세대 IDC 경쟁 뒤처져

광주 국가AI데이터센터 내 전산실 모습.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 ‘H100’이 탑재된 서버를 갖추고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제공=NHN클라우드

우리나라가 글로벌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IDC) 투자처로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규제, 전력 수급, 주민 수용성이라는 3개의 허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확산과 인공지능(AI)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핵심 인프라인 IDC 건설도 속도전을 펼쳐야 하지만 인허가에만 적게는 수개월이 걸리고 지역 주민이 반발할 경우 자칫 첫 삽도 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곳에 투자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 이는 빅테크뿐 아니라 국내 기업에도 적용되는 문제다. 클라우드 확산과 AI 전환으로 IDC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해외투자 유치와 국내 산업 육성에 실기할 경우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열악한 AI 인프라…IDC 되레 감소=클라우드 전환에 필요했던 1세대 IDC 수요는 일단락됐고 AI와 6세대 이동통신(6G), 자율주행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이미 2세대 IDC 경쟁이 시작됐지만 한국의 인프라는 열악한 수준이다. 일례로 데이터 연산에 필수적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 확보 상황에서 한국의 인프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메타는 약 35만 개의 H100을 장착해 거대언어모델(LLM) ‘라마’를 학습시키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MS)가 확보하고 있는 H100의 수도 15만 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반면 국내 클라우드 업계에서는 한국의 민간·공공 IDC에서 보유한 H100의 수를 약 2000~3000개 수준으로 추산한다.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는 “해외 빅테크들은 하나의 IDC에서 수십만 개의 GPU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은 전체를 다 합해도 수천 개 수준”이라며 “한국이 추진하는 산업 특화 경량화 거대언어모델(sLLM)을 감당해 내기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AI 칩만 부족한 것도 아니다. AI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인 IDC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의 ‘코리아 데이터센터 마켓 2024’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IDC는 153개로 전년 대비 34개가 감소했다. IDC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공급이 지체되면서 빅테크 유입은커녕 이미 공급된 IDC에 임대 수요도 꺾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훈 NHN클라우드 대표는 “향후 국내 AI 기업들은 물론 한국 서비스를 준비하는 해외 빅테크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고도화된 IDC 공급이 빨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역 분산…기업은 수도권 선호=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지진 등 자연재해도 적어 IDC 입지로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있지만 전력 공급 능력도 충분하다. 이 같은 경쟁력에도 빅테크들의 투자가 시들해진 것은 규제 강화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정부는 6월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10㎿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을 것을 의무화했다. IDC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을 막고 지역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다. 원자력 등 주요 발전 시설이 영호남 지역에 몰려 있는 탓에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는 IDC를 비수도권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인프라와 인력 수급 등을 이유로 수도권을 선호하기 때문에 미스매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재국 국회 입법조사처 선임연구관은 “IDC 계약전력의 50% 이상을 자가발전할 수 있어야 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전자파·소음·열섬 발생 우려에 따른 지역 주민 반발도 변수다. 일각에서는 유해 전자파 발생 등을 주장하며 IDC를 혐오시설로 낙인 찍고 지역 주민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실제 유해성 여부를 평가하고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신규 IDC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확장 속도는 더딘 편이다. 신규 IDC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지역 주민 반발에 부딪힐 경우 가동 시기가 더 늦춰질 수밖에 없다. 김문태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라는 점에서 IDC가 지체돼서 건설될 경우 정작 가동에 들어갈 때는 낙후시설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IDC 구축의 시급성은 데이터 사용의 초과 수요 문제 때문만도 아니다. 앞으로 IDC 수요는 ICT 기업뿐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이미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신약 임상 과정을 효율화하는 의료 AI, 작물의 생육 데이터를 모아 자동화하는 농업 AI 등 사회·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오혜연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향후 AI는 정보기술(IT) 분야를 넘어 제조나 의료 등 전 산업 영역으로 확장할 수밖에 없다”며 “IDC에 대한 미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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