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구단선(九段線)’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바다 외곽으로 9개의 직선을 그려서 그런 이름이 붙어 있다. 중국은 구단선을 통해 남중국해 해역의 약 90% 영유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인근 국가인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들 바다 영유권과 겹친다. 앞서 필리핀은 이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고 2016년 PCA는 ‘중국의 9단선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인근 도서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등 힘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남중국해’라는 이름 자체에 불만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통상적인 명칭으로 그대로 쓴다. 중국에서는 그냥 ‘남해’라고 부른다.)
남중국해 구단선 이야기를 새삼 불러낸 것은 11월 22~24일 중국 상하이 국가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2024 중국국제여유교역회’(CITM 2024·중국국제관광박람회) 때문이다. 이 행사의 로고에 중국지도가 있는데 육지의 영토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부분에는 구단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는 동남아 국가들도 상당수 참석했지만 이 로고에 대해 시비를 따진 동남아국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했다. 특히 관련국 중 말레이시아는 이번 행사에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박람회 주빈국의 영해권을 침해하는 지도가 행사 로고라니 아이러니하다. 말레이시아의 다또 스리 띠옹 킹 씽 말레이시아 관광예술문화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개막식에서 중국과 우호 관계를 확대하고 관광 교류를 늘리자는 축사를 했다. 그 머리 위로 박람회 로고가 선명했다.
물론 중국은 말레이시아 관광시장의 최대 수요자다. 바로 이웃인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빼면 중국인 관광객이 이 나라 방문 1위다. 올해 들어 1~9월 253만 명의 중국인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내년 유치 목표는 50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호관계가 틀어지면 아쉬운 것은 말레이시아일 듯하다. 그만큼 중국에 대해 노력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내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이번 행사에는 당연히 한국도 한국관광공사 주도로 다수의 여행사들이 참석했다. 다행이라고 할까. 구단선은 한국과 엮이지는 않았다. 한국(남한)은 중국과 분쟁 중인 영토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번 박람회장을 기자가 돌아본 바에 따르면 크게 신경을 거슬리는 내용은 없었다. 지린성(길림성) 부스에서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관련 기념품을 팔고 있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중국과의 마찰 요소는 여전하다. 상이한 정치 체제나 규제부터 역사 문제까지, 사드보복과 한한령 등으로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무비자(30일) 조치를 감사해야 할까. 중국을 찾는 여행자들은 고마울 수 있지만 중국행 여행이 늘면서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관광적자가 확대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말레이시아 사례와 얼핏 겹쳐보인다. 지난달 26일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는 데 지진 보도를 하면서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표시한 일본 기상청의 발표가 한국인들의 신경을 다시 곤두서게 했다. 일본의 독도 침탈 시도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중국과 함께 일본은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는 해외 여행지이기도 하다. 관광수입을 올려주면서도 뒤통수를 맞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