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분권'의 역설 [기자의 눈]

경제부 심우일 기자


“한 시골 지역에서 세입 확충을 위해 지방세를 올렸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그 지역의 인구 유출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기자가 ‘왜 재정이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세입을 늘리지 않느냐’고 묻자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지방세 탄력세율’이 사실상 무색하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지방세 탄력세율은 일정 범위 내에서 자기 지역의 지방세를 조절하는 제도다.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지방세율을 인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지방분권론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과세 자주권 확보 수단으로 탄력세율 제도 강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9년부터 올해 10월 사이 탄력세율 제도를 활용해 지방세율(주민세 제외)을 인상한 지자체는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전국 지자체가 심각한 재정난에도 자체 수입을 확충할 노력을 하지 않는 셈이다. 재정이 어려워도 중앙정부에서 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 명목으로 나랏돈을 지원하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주민 반발을 무릅쓰고 굳이 세율을 올릴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역설적이게도 ‘중앙 지원 강화’로 변질됐다. 지방분권의 강조가 역설적으로 중앙정부 의존을 키워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을 명분 삼아 부가가치세 수입 중 지방으로 내리는 비율을 11%에서 25.3%로 높였다. 이는 지방의 국세 의존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의 세수 펑크 사태도 과도한 지방분권론이 국가 전체의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준다. 각 지자체는 29조 6000억 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세수 결손은 중앙정부의 책임이니 지방교부세를 삭감하면 안 된다”고 떼를 썼다. 이는 ‘중앙정부 없이는 지방 재정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시인하는 말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후 지방분권은 상당한 당위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현재는 저출생·고령화로 국가 전체의 재정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과세 자주권 강화를 주장하기에는 이미 인구 소멸로 회생 불가능한 지방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지방분권론이 아닌 중앙 주도의 국가 재정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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