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파이와 초국가적 범죄조직 등이 연계된 대규모 돈 세탁 조직 2곳이 적발됐다. 이 조직은 세계 30개국에 세력을 뻗치며 현금은 물론 가상화폐까지 세탁해주는 방식으로 마약 거래와 불법 금융 거래 등을 지원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A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영국 국가범죄청(NCA)은 4일(현지 시간) 미국·프랑스·아일랜드·아랍에미리트(UAE) 수사당국과 공조해 ‘스마트 그룹’과 ‘TGR 그룹’으로 알려진 돈세탁 조직을 적발, 84명을 체포하고 2000만 파운드(약 360억 원) 상당의 현금과 가상화폐를 몰수했다.
NCA에 따르면 이 조직의 고객들은 수 많은 청부 살인과 마약 밀매 등에 관련된 아일랜드 기반의 초국가적 범죄 집단인 ‘키나한 카르텔(KOCG)’, 사이버 공격을 주도하는 랜섬웨어 그룹에 자금을 대는 ‘러시아 에스피오나지(스파이) 활동’ 등 거물 범죄집단들이다. 또 부유한 러시아 신흥 재벌(올리가르히)도 이 조직의 주요 고객이었다. 로브 존스 NCA 국장은 이들 조직이 벌인 활동이 지난 몇 년 간 이뤄진 “가장 심각한 돈세탁 행위”라며 “러시아 지배층과 가상화폐 범죄자, 영국의 거리에서 활개치는 마약 범죄자들 사이의 연계를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FT도 “30개국 이상에서 운영되는 이 불법 네트워크는 서방의 경제 제재로 정상적인 금융 거래 등이 불가능해진 러시아 같은 국가들이 조직 범죄자 간의 상호 작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글로벌 은행 시스템과 단절된 사람들의 가상화폐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고 짚었다.
NCA는 스마트그룹과 TGR그룹이 범죄자들이나 부유한 러시아인들이 보유한 현금을 가상화폐로 바꾸거나, 가상화폐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하고 수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신흥재벌들은 이런 세탁 과정을 거친 자금으로 영국에서 부동산을 취득하기도 했다. 러시아 국영 미디어그룹인 RT도 스마트그룹을 이용해 현금을 이동, 이른바 영국에서의 ‘여론 조작’을 위한 자금을 댄 것으로 NCA는 보고 있다. 한편 이들이 가장 선호했던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테더(Tether)’였는데 미국 달러와 1대 1로 연동되는 특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적발된 스마트그룹은 러시아 국적의 38세 에카테리나 즈다노바가 운영하는 업체다. 즈다노바는 제재 대상인 러시아 유력 인사를 대신해 1억 달러 이상을 아랍에미리트에 송금한 혐의로 미국 재무부에 의해 고발당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다른 범죄 혐의로 체포된 상태다. TGR그룹은 러시아 태생 우크라이나 국적자 게오르게 로시 등 3명이 운영하고 있는데 런던과 두바이에 사무소를 두고 스마트그룹과 긴밀하게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TGR 그룹을 이끄는 경영진 등 5명과 단체 4개를 제재하기로 했다. 미국 테러 및 금융정보담당 차관 대행인 브래들리 스미스는 “러시아 엘리트들은 TGR 그룹을 통해 디지털 자산, 특히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악용해 미국과 국제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제재 사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