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보이시죠? 일주일치 혈압을 꾸준히 관찰해보니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은 (수축기) 혈압이 160mmHg까지 오르지 뭡니까.”
이해영(사진)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스마트폰 앱을 열어 하루 동안의 혈압 추이가 기록된 그래프를 보여주며 “24시간 연속 혈압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일 줄 미처 몰랐을 것”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교수의 말대로 화면 속 그래프에는 매일 오전 6~7시, 오후 8~9시 무렵 혈압이 오르는 공통적인 패턴이 나타났다. 하루종일 외래진료가 잡혀있는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하루에 세 번씩 혈압 160mmHg을 넘나들 때도 있었다. 이 교수는 “본래 혈압은 주간에 활동할 때 높아졌다가 야간에 휴식을 취할 때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면서도 “외래진료 때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보니 생각보다 혈압이 많이 오르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고 했다. 이러한 패턴을 알게 된 이후부터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눈을 붙였더니 혈압이 한결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혈압은 말 그대로 혈관을 따라 흐르는 혈액이 동맥혈관 벽에 주는 압력이다. 심장이 수축해서 동맥혈관으로 혈액을 보낼 때 측정한 수축기 혈압과 심장이 늘어나서 혈액을 받아들일 때 측정한 이완기 혈압 수치를 보고 정상 여부를 판단한다. 국내 성인 고혈압의 기준 수축기 혈압은 140㎜Hg, 이완기 혈압은 90㎜Hg 이상이다. 수축기 140~159㎜Hg 이완기 90~99㎜Hg이면 1기, 수축기 160㎜Hg 이상 이완기 100㎜Hg 이상이면 2기 고혈압으로 분류돼 더욱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혈압은 일정 범위 안에서 끊임없이 변한다. 건강한 사람도 스트레스나 육체적인 활동, 온도 변화 등에 의해 순간적으로 혈압이 상승할 수 있다. 이 교수의 경우 안정한 상태에서 혈압을 재면 수축기 130/80㎜Hg 정도가 나온다. 엄밀히 고혈압 환자는 아니다. 그런데 깨어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혈압이 크게 오른 상태로 지낸다는 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신호다. 이 교수는 “일상 속 관리의 중요성을 새삼 체감했다”며 “나트륨 함량이 높은 국물 요리는 되도록 먹지 않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등 혈압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비교적 쉽게 24시간 혈압을 관리할 수 있게 된 비결은 매일 끼고 다니는 반지였다. 얼핏 봐서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링’과 비슷하지만 스카이랩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반지형 혈압계 ‘카트 비피’다. 기존 24시간 연속혈압측정기와 95% 유사한 혈압 측정값을 보인다는 임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혈압 측정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았다.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으면 10분에 한 번씩 혈압과 맥박이 측정되어 스마트폰 앱에 그래프로 표시된다. 반지 내부의 센서에서 특수한 빛(광용적 맥파)이 나와 손가락에 지나가는 혈관의 혈류를 미세하게 측정하고 이를 혈압 수치로 환산해주는 원리다. 커프 없이 혈압을 잴 수 있는 기술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 교수는 고혈압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카트비피와 기존 연속혈압측정기의 정확도를 비교하는 임상연구를 이끌었다. 그 결과 카트비피는 팔뚝을 감싸는 커프를 활용해 혈압을 재는 연속혈압계와 높은 일치도를 나타내며 임상적 유용성을 인정 받았다. 별도의 조작이나 커프 가압에 따른 불편감 없이 일상 속에서 수시로 변하는 혈압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고혈압학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0세 이상 인구의 30%인 약 1300만 명이 고혈압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65세 이상이 약 580만 명으로 가장 많지만 20~30대도 약 89만 4000명에 달했다. 수축기 혈압 130~139mmHg 또는 이완기 혈압 80~89 mmHg으로 정의되는 고혈압 전단계에 있는 20·30대도 159만 1000명이나 됐다. 합치면 250만 명에 육박한다. 문제는 젊은 연령대일수록 고혈압 치료는 커녕 진단을 받은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 고혈압에 해당하는 20~30대 중 57만 4000명(64%)은 의사로부터 고혈압 진단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혈압 치료제를 한 달에 20일 이상 복용한 비율인 ‘치료율’도 35%에 그쳤다. 이런 경우 24시간 혈압 측정이 질환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이와 무관하게 집과 진료실 혈압 차이가 큰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들도 많다. 평소 혈압은 정상인데 흰 가운을 입은 의사만 보면 혈압이 높아지는 ‘백의 고혈압’이나 반대로 평상시 혈압은 높은데 병원에서는 정상 범위에 들어오는 ‘가면고혈압’, 잠자는 동안 혈압 변화가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도 24시간 혈압 측정 대상이다. 이 교수는 “집과 진료실 혈압 차이가 큰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절반쯤 된다. 고혈압 환자 2명 중 1명은 약을 덜 먹거나 더 먹고 있다는 의미”라며 “고혈압은 계속 방치하면 심뇌혈관 질환 발생률이 크게 올라가는 만큼 최소 1년에 한 번쯤은 24시간 혈압을 확인하고 맞춤형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지형 혈압계를 통한 24시간 혈압 측정은 8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비용 부담이 크게 줄었다. 환자는 5000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이 교수는 고혈압학회의 30주년 연구과제로 선정된 ‘무커프 반지형 혈압측정계’ 임상연구의 책임을 맡았다. 반지형 혈압계로 주야간 혈압을 밀착 관리했을 때의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하는 것이 목표다. 내년 상반기 중 환자 모집을 시작해 최종 결과는 7~8년 뒤에야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교수는 “혈압 관리에는 왕도가 없다. 4~5년쯤 지나야 체감할 만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쉽지 않다”며 “의료용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시간대별 혈압 변동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 만큼 심혈관 건강 관리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