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의 키를 쥐고 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사실상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돌연 선회해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깊고 어두운 ‘탄핵의 강’을 건너온 중진 의원들과 친윤계 의원들의 반대에도 20여 명 안팎인 친한계 의원 중 6명만 한 대표와 의견을 같이 해도 탄핵소추안은 국회를 떠나 헌법재판소로 향한다. 보수 진영은 8년 만에 또 정권을 스스로 붕괴시킬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
여권에 따르면 한 대표가 “야당의 대통령 탄핵을 막겠다”는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으면서 친한계 의원 중 상당수가 7일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표를 던질지 고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날 의원총회에서 ‘탄핵 반대’ 당론을 채택했지만 6선으로 당내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이날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의사를 천명했다. 조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안 의원은 “탄핵안 표결 전까지 윤 대통령이 퇴진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 탄핵안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야당의 탄핵소추를 막겠다”는 입장을 하루 만에 선회한 까닭은 윤 대통령이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과 독대 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비상계엄령 선포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의 체포 시도가 있었던 점을 언급하면서 “당론으로 정해진 건 못 바꾸겠지만 제 의견은 대통령의 업무 정지”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제는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면서 “(국민들 사이에) 또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불안이 있고 이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며 의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 대표가 직접 탄핵론에 불을 지피면서 탄핵의 ‘캐스팅 보트’를 쥔 친한계의 기류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버텨온 ‘탄핵 저지선’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탄핵 연대’를 구축한 범야권 의석수는 192석이나 앞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친한 의원 18명 중 절반만 합류해도 가결 요건을 충족한다.
국민의힘 소속 중진·친윤계 의원,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일제히 ‘탄핵 불가'를 호소했다. 전임 당 대표였던 김기현 의원은 “당론을 정할 때는 ‘대표와 상의하라’더니, 정작 이 엄청난 결정을 내릴 때는 당헌·당규를 위반한 채 자신 혼자 처신하고 있다”고 한 대표를 비판했고, 권영세 의원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도 않은 주장들을 근거로 탄핵에 찬성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부 중진들은 의총이나 친한계 의원들과 만나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당이 멸문지화의 아픔을 겪은 일화를 언급하며 “분노에는 공감하지만 당이 무너지는 건 막아야 한다”며 친한계 의원 설득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오세훈·박형준·홍준표 시장 등 여당 소속 시도지사 12명도 입장문을 내 “대통령 탄핵만은 피해야 한다”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책임총리가 이끄는 비상거국내각 구성·임기 단축 개헌 등 2선 후퇴를 요구했다.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탄핵 속도가 좀 빠르지 않느냐”며 야당발(發) ‘탄핵 열차’에 곧바로 올라타는 데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흐르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해소로 이어져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탄핵 분위기 조성으로 기세를 잡은 야당은 여권을 향한 공세 수위를 바짝 끌어올렸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직무에서 배제하고 필요한 범위 내에서 수사·체포·구금·기소·처벌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경태 의원을 비롯해 탄핵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여당 내 10명의 의로운 의원들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민의힘 대표를 역임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탄핵의 교훈이라면 탄핵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고 나누어 들고, 혁신하고 쇄신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라며 여당 의원들의 탄핵 동참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