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파리의 위기와 서울의 비극

국제부 김경미 차장

성숙한 민주주의국가로 알려졌던 두 나라의 정부가 3일과 4일 잇따라 휘청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무너졌고 다른 한 나라는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의회 반대로 62년 만에 내각이 해산된 프랑스와 예상치도 못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 정국에 돌입한 한국 이야기다.


두 나라는 정치체제부터 산업·경제구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면이 다르다. 비교가 무리일 수도 있지만 이번 사태는 일련의 유사성이 있다. 우선 정치의 분열이다. 두 나라 모두 양극화된 정치 구도 속에서 정부와 국회가 시작부터 대립각을 세웠다. 중도 우파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다수당에서 총리를 뽑는 전통을 무시한 채 47석(전체 577석)의 군소 정당 정치인을 총리로 뽑아 좌파·극우가 다수인 야당의 공분을 사는 등 갈등의 씨앗을 낳았다. 2022년 근소한 득표차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도 임기 내내 야당이 장악한 국회와 부딪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윤 대통령을 힘겨운 임기를 보낸 ‘레임덕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타협을 모르는 정부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FT는 프랑스 정부 붕괴의 불씨가 된 긴축 예산안에 대해 “총리가 극우 정당과의 협상을 거부하다 뒤늦게 양보안을 내놨지만 때는 늦었다”고 짚었다. 총리는 협상이 여의치 않자 ‘의회 패싱’이라는 강수를 두다 역풍을 맞았다. 윤 대통령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정 파트너인 야당 대표를 2년 이상 만나지 않는 등 불통을 이어왔다. 그러다 끝내 상대를 “반국가 세력”이라 규정하고 계엄령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가 헌법상의 권리 행사라면 한국은 위헌·위법에 가깝다는 점이다. 파리가 위기에 빠진 정도라면 서울이 마주한 것은 비극인 이유다.


민주주의 핵심 원리는 대화와 타협이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이 어렵다고 물리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민주주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세계는 이미 “한국이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올랐다”며 주시하고 있다. 정치권은 대한민국이 마주한 비극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정신으로 돌아가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