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정국이 급속히 전개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원 넘게 오르는 등 요동쳤다. 환율은 당분간 한국의 정치 리스크로 불안정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초 취임을 앞두고 달러화의 글로벌 강세도 이어지고 있어 환율이 1450원대에 도달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6일 오후 3시 30분 현재 전날보다 4.1원 오른 1419.2원에 거래됐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0.9원 오른 1416.0원으로 출발한 뒤 오전 10시 35분께부터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윤석열 대통령 직무 배제 필요성” 발언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시장에 직접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10시 53분께는 14.1원 오른 1429.2원까지 치솟았다. 주간 거래 기준 장중 환율이 1430 선에 가까워진 것은 2022년 11월 4일(1429.2원) 이후 처음이다. 이후 외환 당국의 개입 영향으로 환율은 1420원대로 떨어진 뒤 1410원대까지 후퇴했다. 정용호 KB증권 차장은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과 2차 계엄 관련 뉴스에 외환시장이 직접 영향을 받았다”며 “원화에 대한 호가가 낮은 상태여서 시장 심리를 조금이라도 자극해도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당국의 개입으로 진정된 상태이긴 하나 정치권 이슈로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달러가 글로벌 시장에서 강세를 보인 점도 이날 외환시장에 작용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이날 105.8까지 뛰기도 했다. 달러 인덱스는 100을 넘을 경우 달러화가 주요 통화에 비해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을 앞두고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지는 양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면서 향후 시장에서 수혜를 받을 투자 상품에 자금이 쏠리는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며 “달러 강세 역시 이 같은 현상으로 당분간 유로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에 대한 달러화 강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외환시장과 관련해 원화의 등락이 거듭될 것으로 내다봤다. 달러 강세 현상과 더불어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위험이 더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3일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1440원 선을 넘기도 했는데 이 같은 현상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 차장은 “계엄 이전에도 한국 경제 악화와 트럼프 트레이드 이슈로 원화 약세 환경이었는데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발생했다”며 “이제는 환율 상단을 1450원으로 열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개미들의 투자심리가 많이 약해진 것 같다”면서 “문제는 환율 하단이 높아지는 상황이라 당국 개입에도 당분간 환율 수준 자체가 내려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짚었다.
고환율이 증시의 외국인 자금 유입을 제한하는 악순환이 펼쳐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석현 우리은행 연구원은 “정치적 불확실성 위험이 더해지고 있어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고환율 국면이 지속될 수 있다”며 “이는 국내 증시 외국인 자금 유입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수출 증가율이 둔화되고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한은에 따르면 10월 경상수지는 97억 8000만 달러(약 13조 850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다만 반도체 수출 증가세 둔화로 흑자 규모는 직전 달인 9월(109억 4000만 달러)보다 11억 달러 줄었다. 한은은 “수출은 인공지능(AI) 투자 수요 등에 힘입어 고성능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출 증가세는 둔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