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확실성과 고령화 시대의 자산배분 전략 : 구성의 오류 벗어나야[김세중의 여의도 커피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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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시장이 급박하게 요동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치, 경제, 금융시장 관계는 선후행 및 주종 구별이 명확하지 않지만 극단은 유아독존을 불가능하게 한다. 지금은 금융이 극단처럼 보이는 정치의 눈치를 보고 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커닝 페이퍼(cheat sheet)가 있다.


정확히 8년전, 미국은 트럼프 허니문,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슈에 매몰돼 있었다. 당시 금융시장은 날씨만큼 살얼음판이었지만 실제 모습은 안정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한국경제의 장기부진이 정치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탄핵 이슈는 정치적 교착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로 치환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리적 기제는 오래가지 않고 가더라도 개인의 생각과 반대의 결과를 종종 낳는다. 그래서 신선놀음이 아니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장기 기관투자자 관점에서 본 자산배분 전략과 제도변화가 이번 칼럼의 화두다.


필자는 얼마전 여의도에서 공적연기금의 전현직 CIO 2인, 자산운용사 대표 등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를 가졌다. 필자에게 전직 공적연금 CIO가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책자본을 선물로 주었다. 논문은 공적연기금의 자산배분 및 목표수익률 설정방법 등에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었다. 갑자기 한정식집의 점심 메뉴가 바뀐 느낌이었다. 공적연기금의 해외 운용사례, 자산배분 모형, 장기목표 수익률 설정 방법 등이 대화의 메뉴가 되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자산배분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다.


공적 연기금의 장기 자산배분에 있어 중요한 화두는 정치 불확실성보다는 우리 경제의 장기성장 모멘텀에 영향을 주는 고령화 같은 이슈다. 한국의 빠른 고령화에는 기대수명 증가와 저출산이 한몫을 했다.


특히 고령인구 비중 증가속도를 결정하는 변수 중 하나가 낮은 출산율이다. 장기 기관투자자들은 출산율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세계적 최하위권이고 인구감소의 속도를 걱정하게 만든다. 필자는 최근에 회자된 유명 배우의 비혼출산이 낮은 합계출산율을 높이는 제도적 변화의 계기가 될 지 주목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15세부터 49세까지 가임여성의 연령대별 출생률을 합산한다.


그 정의가 말해주듯 비혼이거나, 만혼이면 합계출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교적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결혼가정의 연령대별 출산율은 비교적 낮지않을 것이다. 비혼과 만혼 증가가 낮은 합계출산율을 만든다. 결혼을 장려하는 다양한 정부정책에도 출산율 반응이 미미한 상황이다. 유명 배우가 쏘아 올린 ‘비혼출산의 공’이 한국사회에서 어디로 튈 지 장기투자자들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고령화 대비 장기투자기관의 자산배분 변화도 이슈다. 고령화 덕(?)에 한국 금융자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 중에도 장기자산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수명 연장에 대비하여 연기금이나 보험 상품 의존도가 높아졌다. 20년 전, 65세 이상의 인구비중이 8.3%일때 국민연금은 100조원 수준이었다. 23년말 그 비중이 18.4%로 치솟을 때 국민연금 자산규모는 1,035조원으로 불어났다.


이 밖에도 보험자산, 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전체 금융자산은 기록적으로 성장했다. 장기투자기관들은 고령화 부채 매칭용으로 안정적 현금흐름을 장기간 수취가 가능한 장기채권, 대체자산 등을 집중적으로 늘려 대응해왔다.


여기서 고민거리는 장투기관 자산배분에서 PE(Private Equity)/VC(Venture Capital) 비중이 작다는 사실이다. 국내 장투기관의 PE/VC 등 사모투자 비중은 낮은 편이다. 장기채권과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자산으로 매칭하고 있지만, 그것이 장기자산인 PE/VC로는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연기금은 PE/VC 비중을 늘리면서 자산분산 효과와 고수익을 동시 향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예일대학 사례가 있다. 예일대학은 자산배분에서 PE/VC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여 운영한다. 전체 자산수익률이 월등하다. 이러한 성과는 주요 기관투자자들에게 벤치마킹 돼 확산됐다. 연기금의 운용수익률 상승이 미국 은퇴자의 보루가 되고 있다.


고령화 대비 목적이라면 안정적 자산운용이 최우선이다. 고령화와 위험자산은 상극처럼 인식된다. 고령 개인은 필요기반 소비를 하기 때문에 무리한 고수익보다는 하방리스크를 막는데 중점을 둔다. 모든 개인이 안정추구에 집중하면 전체 수익률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고령화 대비 개인의 최적화 선택이 역설적 총합 결과를 만든다.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이다. 안정적 자산증가를 위한 전체적 관점의 설계가 필요하다. 보유기간이 장기화된다면 위험자산이 가지는 변동성이 줄어든다. 장기투자에 따른 변동성 제어로 PE/VC의 높은 기대수익률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TDF와 같은 은퇴자 대비용 자산배분에서 은퇴 예상 기간이 멀수록 주식비중을 높이는 이치와 같다. 보험, 은행 자산운용에서 위험자산과 비유동성 자산은 높은 위험계수를 적용 받고 있다.


PE/VC 자산배분 비중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장기투자는 시간분산과 펀더멘털로 변동성을 극복하게 만드는 마법을 보인다. 장기자산일수록 위험계수를 낮추는 제도변화로 구성의 오류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고령화 사회의 미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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