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추진 여파 속에 국내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불러온 각종 보조금·관세 리스크에 국내 정치 혼란에 따른 환율 우려까지 겹쳐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8일 “12월이 되면 경영계획보고와 인사까지 마무리돼 다시 신발끈을 묶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기존 계획이 무의미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당장 환율이 우리 기업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6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24원으로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시장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뚫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국내 정유 업계는 연간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해외에서 사들이고 있는데 전부 달러화로 결제하고 있어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일부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유업의 근간인 원유를 달러화로 사들여야 해 고환율은 정유 업계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중국의 밀어내기식 수출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철강 업계 역시 원가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철강 업계는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업황이 양호할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한다는 대안이 있지만 최근 철강 수요는 극도로 위축된 상태라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고환율 수혜 업종으로 구분되는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기업들도 높은 환율이 장기간 유지될 경우 피해는 불가피하다. 제품을 수출할 때는 유리하지만 장비와 설비를 반입할 때 드는 비용이 증가해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최근에는 환율 상승(원화 약세)이 반드시 수출에 유리하지 않다는 학계의 분석도 적지 않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이 뛰면 한국에 대한 신인도가 낮아져 수출에 불리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정부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재계는 특히 정부 기능이 마비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인접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정부까지 멈춰설 경우 반도체·배터리 등 각종 보조금 협상도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방산 업계도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의 협상력이 수출 실적으로 이어지는 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 최근 방한했던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4일 한국항공우주(047810)(KAI)를 방문해 한국형 기동헬기(KUH) 시험비행과 생산 현장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일정을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