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선언한 가운데 여당과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책임총리제’로의 전환을 밝히며 수습에 나섰지만 당분간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리더십 공백 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상 대통령에게 주어진 외교 분야에 대한 권한을 총리가 대행하는 데 대해 위헌 논란이 제기되는 것을 비롯해 한미동맹 등 국제사회에서 신속하고 힘이 실린 외교권 행사를 위한 의사결정 체계가 무너지면서 외교안보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최대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최대한 이른 시기에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워졌다. 미국 새 정부의 정책이 수립되기 전 정상회담으로 러시아·북한 동맹조약과 우크라이나 파병 등의 현안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나 주미 한국대사관을 중심으로 현상 유지 정도의 대미 외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언한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재협상도 쉽지 않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지금 미국이 우리 정부와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건 미국 표현을 빌렸을 때 ‘법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 탄핵 이후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외교권을 발휘하는 것”이라며 “탄핵이 부결되자마자 미국이 입장을 내놓은 사실 자체가 많은 의미가 있다는 점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대통령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러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한 후 한국 대통령보다 김 위원장을 먼저 만날 수 있다”며 “새로운 미 행정부의 분위기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교 60주년을 맞은 일본과의 협력이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조성된 중국과의 관계 개선 흐름도 동력이 끊길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다음 달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첫 방한도 사실상 물 건너갔고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했지만 회의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해 한 총리는 8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한미와 한미일, 그리고 우리의 우방과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외교부 장관을 중심으로 전 내각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현직 고위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한동안 한국이 정상외교 올스톱 상황에 시달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야당의 탄핵 공세에 더해 여당에서도 질서 있는 퇴진론을 내세우는 만큼 윤 대통령이 발휘할 외교력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에서 외교 공백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외교권이 종이에 적혀 있는 게 아니라 현안을 논의하는 권한인데 누가 하든 상대국이 받아주겠느냐”고 반문하며 “권한 정지가 아니라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불능 상황”이라고 했다.
국방 안보도 흔들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국방부는 국방장관 직무대리인 김선호 국방부 차관을 중심으로 군정권과 군령권을 관장하며 군의 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할 방침을 세웠지만, 군 내부에 총리의 군 지휘·감독 대행 여부를 두고 혼란스러워 해 불안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일단 대북 군사 상황이 발생하면 국방장관 직무대리(김 차관)가 지휘하겠지만 김 차관은 (결국) 현 국군통수권자(대통령)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군 일각에서는 총리의 군통수권 행사에 대해 따라야 하는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일단 장관 직무대리인 김 차관이 7일 저녁 전군 주요 지휘관과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주요 직위자들이 참여한 화상회의를 주재하며 철저한 대비 태세를 지시했다.
한편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북한군의 움직임과 북한 매체의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현재까지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으며 대북 경계 태세는 이상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