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스마트홈 시장 진입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신형 ‘홈팟’에 중국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독점 탑재된다. 그동안 중국은 아이폰 등 일부 제품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공급망에 침투해왔지만 특정 기기에 납품되는 OLED를 전부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한국 업체들이 힘겨운 우위를 이어오던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이 승기를 잡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8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이 내년에 출시 예정인 신형 홈팟에 들어갈 OLED를 중국 톈마가 전량 공급한다. 톈마는 BOE와 차이나스타(CSOT) 등을 잇는 중국 내 4위권 디스플레이 기업이다. 홈팟은 2018년 처음 출시된 스마트 스피커지만 애플은 이 제품에 디스플레이를 추가해 애플 제품을 비롯한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스마트 허브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홈팟에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폼팩터는 이번이 최초다.
신형 홈팟에는 6~7인치 저온다결정실리콘(LTPS) 제품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양산되는 OLED 중 최선단 제품인 저온다결정산화물(LTPO)은 LTPS 대비 저전력과 화질 성능에서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비싸다. 홈팟은 스마트폰처럼 수시로 보지 않아 화질의 중요성이 낮고 전력 소모도 적어 비싼 LTPO를 고집할 유인이 적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 세대 홈팟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이번에 선보이는 제품도 새로운 폼팩터인 만큼 가격 경쟁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LTPS에서는 한중 간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어 비용 면에서 유리한 중국 제품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액정표시장치(LCD)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 업계는 OELD에서도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며 애플 공급망 내에서 존재감을 높여왔다. 하지만 단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OLED를 독점 공급하게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업체들은 아이폰 일부 모델에 OLED를 납품해왔지만 한국 업체와 비교해 공급 단가가 10~15달러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출혈경쟁을 펼쳐온 셈이다.
하지만 중국 업계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조금씩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BOE는 아이폰13을 시작으로 OLED 공급망에 진입해 2~3년 내 출시될 맥북프로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함께 OLED를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제품은 맥북 사상 최초로 OLED가 적용되는 제품이다. 애플 역시 중국 기업들을 통해 비용을 낮추고자 중국 기업의 기술 혁신을 돕고 있다. 애플은 최근 중국 베이징·선전·쑤저우·상하이 등 4곳에 디스플레이 연구 벨트를 구축했다. 이 연구소는 아이폰·아이패드·비전프로는 물론 향후 나올 폴더블 아이폰 등에 들어갈 패널을 현지 회사들과 개발·테스트하고 있으며 애플은 선전 연구소에만 약 20억 위안(약 1935억 원)을 투자했다.
국내 기업들은 톈마의 공급계약이 향후 국내 업계의 OLED 패권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실제 올해 들어 국내 업계는 출하량 기준으로 처음 중국 업계에 주도권을 내주기도 했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글로벌 OLED 시장 출하량 점유율은 48.2%로 50.5%를 기록한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 전년 동기 대비 한국(61.8%)은 점유율이 13.6%포인트 감소했지만 중국(37.1%)은 13.4%포인트 늘었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애플과 일하게 되면서 쌓이는 노하우는 다른 앱으로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