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정 혼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나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의 표결 불참에 따른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 나흘 만에 사과하고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또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임기 단축과 2선 후퇴를 선언하면서 탄핵소추안에 찬성하려던 일부 친한계 의원들이 마음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헌정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일단 무산됐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군대를 동원한 ‘내란죄’ 혐의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민주당은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재추진하는 등 매주 탄핵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즉각 사퇴 아니면 탄핵에 의한 조기 퇴진 외에 사태를 해결할 길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직무정지와 체포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여야의 극단적 대치 속에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 위기가 증폭될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공동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국을 조속히 수습하고 국정 공백이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미칠 혼란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은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하고 총리와 당이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직무 배제 기간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책임 총리’는 헌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아 중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리더십 공백으로 경제·민생 정책이 표류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정상 외교 등이 올스톱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무력 도발 등 긴박한 안보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군 통수권 행사를 두고도 논란이 일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대통령 권한의 이양은 헌법에 따라야 한다”며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 행사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조기 퇴진의 구체적 일정부터 하루빨리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측 가능한 정치를 통해 정국 혼란 장기화와 국정 마비 사태를 피할 수 있다. 또 7일 대국민 담화에서 약속한 대로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정치적 책임은 물론 사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검찰과 경찰은 8일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내란죄와 직권남용죄 혐의 등으로 긴급체포하는 한편 장관 집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검경은 성역 없이 신속히 수사하고 윤 대통령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 진상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군을 동원해 헌법기관의 권능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므로 사법절차에 따른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가적으로 경제·안보 복합위기가 증폭되는 상황을 맞았다. 여야 모두 탄핵 국면에서 차기 대선의 득실을 따지지 말고 책임 있는 수권 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여야가 국회에서 거국내각 구성,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차기 대선 일정 등 정국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국정 정상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거대 야당도 무한 정쟁을 접고 정국 안정을 위해 협력해야 역풍을 피할 수 있다. 이번 계엄 사태가 우리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고 국익과 안보를 지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여야 정치권이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