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 특위 이탈… 정책 참여·자문 거부… 좌초 우려 커지는 의료개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파문과 계속되는 혼란 속에 정부가 이른바 ‘4대 개혁’ 중 특히 역점을 뒀던 의료개혁의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의사단체들이 계엄사령부 포고령에서 사직 전공의 등 의료인이 ‘처단’ 대상으로 지목된 점에 분노하면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떠났다. 이에 이달 말로 예정된 비급여·실손보험 개선,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 등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발표도 불투명해졌다.


의료계는 더 나아가 정부 정책 전반의 참여나 자문을 거부한다는 입장까지 나아갔다. 아예 의대 정원 증원 등 정책을 내란 관여자들의 독단에 따른 것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사직 전공의들도 의정갈등 이후 처음으로 공식 집회를 열어 정부를 규탄했으며 의대교수들은 관련 정책을 모두 윤 대통령 당선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료개혁 과제들은 정치적 혼란을 떠나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필수적인 과제인 만큼 정권과 무관하게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의료공백을 계기로 그간 의료계가 주장해 온 사항들을 특위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좌초는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과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처단’에 뿔난 의사단체, 의료개혁특위 전면 중단

8일 보건복지부·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병원협회·대한중소병원협회·국립대학병원협회는 의료개혁특위 참여를 중단한다는 입장을 각각 전달했다. 지난 3일 계엄사령부 포고령에서 전공의 등 이탈 의료인이 복귀하지 않으면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언급한 점이 결정적이었다. 병협은 지난 5일 입장문에서 “전공의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처단’하겠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며 특위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의료개혁특위는 출범 당시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학회에 참여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면서 의료계 대표성 논란을 지적 받은 바 있다. 그나마 병협, 중소병협, 국립대학병원협회가 참여하면서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 의사단체들이 모두 빠지게 되면서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앞서 의사단체들의 탈퇴로 좌초된 여야의정협의체에 이어 의료개혁특위마저 중단될 경우 의료개혁 동력이 결정적으로 무너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위는 10월부터 시작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을 비롯해 비급여·실손보험 개선, 수가(의료행위 대가) 등 보상체계 현실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을 논의하고 있다. 수요자 단체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첨예한 대립 상황에서 의료계가 특위에서 빠진다면 과연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지 모르겠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의료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의료개혁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나 앞으로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복지부 측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 대해 “현재로서는 연내 발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개혁안 논의 상황을 보면서 발표 일정을 확정해 밝히겠다”고 답했다.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젊은 의사 의료계엄 규탄 집회'에서 사직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이 계엄 규탄 및 의료개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정갈등 후 첫 집회 전공의 “처단당해 마땅한가”

전공의들은 2월 의정갈등 발발 이래 처음으로 공식 집회를 열어 거리로 나왔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경찰 추산 500명(주최 측 추산 6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계엄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은 ‘즉흥 개혁 규탄’ ‘의료계엄 반대’ ‘의료농단 의대모집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규탄했다. 9일로 마감하는 내년 전공의 모집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젊은 의사들의 신변 안전과 인권을 보장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우병준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대해 “특정 직역을 대상으로 임의 처단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엄사령부가 지난 3일 발표한 포고령은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언급했다. 우 사직 전공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언제든지 권력의 변덕에 따라 처단당해 마땅한 직업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의대 교수들과 전공의, 의료인 가족 등이 8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앞에서 시국선언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의대교수 “尹 출마 전 돌아가라” 보건노조 “국민의힘 해체”

의대 교수들도 이날 시국선언을 냈다. 전국의대교수비대위(전의비)는 이날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앞에서 시국선언대회를 개최한 뒤 윤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윤봉길 기념관을 찾았다. 그가 출마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다.


전의비는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헌정질서를 무시하고 특수부대를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려 했다”며 “주요 인사들에 대한 불법 체포와 연행을 기도했음에도 국민의힘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망각한 채 내란을 일으킨 윤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비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엄 포고령에는 파업도 하지 않은 사직한 전공의를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전공의를 바라본 시선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전의비는 “윤 대통령으로 시작된 의료농단과 교육농단을 다시 윤석열이 당선되기 전으로 돌려야 한다. 의대증원과 의료개악은 당장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을 통해 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5명은 국회를 무력화하려고 한 친위 쿠데타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스스로 내란 세력의 종범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정당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스스로 해체”라며 “즉각적인 내란범 체포와 구금, 준엄한 법의 심판을 통해 헌정 유린 상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