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민생 망칠 권한 없어…예산 정상적으로 처리해야” [View&Insight]

탄핵 정국 장기화에 韓 대외 신인도 '빨간불'
'P 리스크'에도 경제 돌아간다는 신호 보여줘야
나라 살림 내년도 예산안 합의 처리는 바로비터
野 예산안 추가 삭감…민생엔 여야 따로 없어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이 한국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9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30원을 넘어섰고 코스피와 코스닥은 급락하며 나란히 연저점을 찍었다. 3일 밤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민주적 절차로 해제한 한국의 제도를 높이 평가했던 국제사회의 시각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은 대외 신인도를 일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외 신인도 추락에 따른 외국 자본 이탈과 금융·외환 시장의 불안이 경제에 몰고 올 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통해 온 국민이 뼈저리게 체험했다. 정치적 혼란이 대외 신인도 하락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 리스크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도 경제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를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가 살림인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국제사회가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내년도 예산안 논의는 정치권의 탄핵 공방으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전날 담화문에서 “정부가 먼저 몸을 낮추겠다”며 한때 여야 협상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같은 날 밤 더불어민주당이 추가로 7000억 원을 더 감액한 수정 예산안을 들고 나오면서 원위치로 되돌아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정부안(677조 4000억 원)에서 4조 1000억 원을 감액한 예산안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0일까지 여야 합의안을 마련해오라며 감액안의 본회의 상정을 미뤘는데 오히려 추가로 7000억 원을 더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예산을 볼모로 탄핵을 흥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탄핵 공방에 여야가 계속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다. 연말까지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벌어진다. 준예산은 공무원 급여 등 정부 부문의 경상 경비와 계속 사업비만 올해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다. 국가 연구개발(R&D)·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뿐만 아니라 서민 지원 등 복지 지출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준예산은 1960년 제도 도입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경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탄핵 정국으로 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고 국제사회가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우려하는 상황에서는 여야가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예산 당국은 지역화폐를 비롯해 야당 측 주력 사업에 대한 예산 증액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야당이 응답할 차례다. 거대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할 권리는 있지만 민생을 망칠 권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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