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자취엔지수


2022년 9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대만 증시에서는 외국인들이 43억 7290만 달러(약 6조 2700억 원)나 순매도하는 ‘썰물 장세’가 연출됐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 증시에서는 외국인 순매수가 2조 7000억 원에 이르렀다. ‘대만 통일’을 공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에 성공하자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대만 증시를 탈출해 한국으로 옮겨가는 ‘머니 무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해 10월 대만 자취엔(加權)지수는 그 여파로 4.74% 하락한 반면 코스피지수는 5.24%나 상승했다.


자취엔지수는 대만 증권시장의 주가 흐름 전반을 보여주는 주가지수다. ‘자취엔’은 우리말로 가중한다는 뜻이다. 자취엔지수는 현재 800개가 넘는 종목의 주가를 단순평균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가 총액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1966년 도입된 자취엔지수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1989년 6월 19일에 1만 포인트를 넘어섰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업체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만 첨단기술 산업의 급성장에 힘입어 급상승한 자취엔지수가 올해 3월 21일 2만 포인트를 돌파했다. 다만 자취엔지수는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미중 간 무역전쟁,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 대형 변수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요즘은 2022년 10월과 달리 대만 자취엔지수는 날개를 단 반면 한국 코스피지수는 날개가 꺾인 모습이다. 세계적 인공지능(AI) 붐에 올라탄 자취엔지수는 올해 들어 30% 가까이 상승해 2009년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코스피는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에 이은 계엄 사태 충격 등으로 지난해 말 2655.28에서 9일 2360.58로 11%가량 하락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7일 “한국이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면서 증시가 대만에 더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계엄 사태로 인한 국가 신인도 추락이 없도록 혼란을 속히 수습해 외국인투자가들이 코스피지수를 선호하게끔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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