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유럽의 추락이 말하는 것

국제부 이완기 기자

2004년 출간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은 국내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저자는 “미국의 정신이 쇠퇴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러피언 드림이 태동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의 물질적 부를 중시하는 미국의 가치는 시대적 소명을 다한 반면에 연대·포용 등 유럽의 가치가 떠오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책 제목처럼 유럽은 많은 이의 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최근 유럽에서는 위기의 신호가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은 설립 후 처음으로 자국 내 일부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알렸고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는 파산을 선언했다. 독일 최대 철강사 티센크루프도 인력의 40%를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유럽연합(EU)이 추산한 유럽 대륙의 경제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각각 0.9%, 1.5%에 그친다.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연 2%대 중반대 성장률을 이어가는 미국과 상반된다.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삐걱대기 시작한 유럽에서 인구 고령화, 생산성 저하, 낮은 투자, 혁신 부족 등이 누적돼 이 지경까지 왔다는 진단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십 년간 경고음이 울리고 성장이 부진했던 유럽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쇠퇴를 맞닥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 그 어떤 강대국이라도 몰락을 피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유럽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유럽의 추락을 두고 “실존적 위험에 직면했다”고 표현하면서 금융시장 통합을 포함한 중대한 구조 개혁 과제를 제언했다. 이달 새로 출범한 EU 집행위원회는 드라기 전 총재가 제시한 과제들을 실행에 옮길 것으로 관측된다.


5000여 년 인류사에서 특정 국가의 부상과 몰락은 숱하게 반복됐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유럽의 추락이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령화, 주력 산업 경쟁력 저하, 혁신 부족, 정치 리더십 불안 등 유럽이 당면한 위기가 대한민국의 그것과 닮은꼴인 탓이다.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제때 대처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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