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선의도 시장을 거스를 순 없다

바이오부 박효정

박효정 바이오부기자

“높은 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고자 의약품 1만 3814개 품목 중 6506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합니다. 약값은 평균 14% 인하되고 환자 본인 부담은 연간 5000억 원 경감될 것입니다.”


정부가 2012년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으로 일괄 약가 인하를 시행하면서 밝힌 명분이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지난 현재 국내 경제학자들이 영향을 분석한 결과 오히려 소비자 부담이 13.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들이 낮아진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약가 인하 대상이 아닌 비급여 의약품 등의 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풍선 효과’ 탓에 국민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 또한 크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 실패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2017년까지 7% 안팎이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로 대폭 상승했고 2019년에도 10.9%를 기록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린다는 선의는 좋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무인 키오스크와 서빙로봇 등이 저임금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했고 직원을 두지 않는 ‘나 홀로 사장’의 수는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난다. 시장은 정부의 선의를 위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어렵게 개발한 신약을 국내에 출시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심지어 한국 기업인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조차 국내에서는 구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시장에 출시해봤자 다른 국가에서 가격을 매길 때 손해만 되는데 출시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내년에도 새로운 약가 인하 정책인 ‘해외 약가 비교재평가 제도’ 시행을 예고했다. 이것이 정부가 2012년부터 의도한 대로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제약산업 선진화’를 이룰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제약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려면 적정한 약가를 받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할 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선의도 시장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정부 당국자들이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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