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힘이 쏠리자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 내 친윤(친윤석열)계가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원조 친윤’ 권성동 의원을 앞세워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대응하고 친윤 후보를 조기 대선에 세우는 ‘투트랙’ 전략 가동에 나선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반대하는 권 의원이 신임 원내사령탑에 오를 경우 현 지도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한동훈 축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2·3 계엄 사태’의 거센 후폭풍으로 집권여당이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상황에서 계파별 권력투쟁만 가열돼 윤 대통령 탄핵 표결의 이탈표는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12일 의원총회를 열고 권 의원과 김태호 의원 간 경선을 통해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당 안팎에서는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 첫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권 의원이 재등판한 배경을 두고 향후 정국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용산과 친윤계의 생각이 일치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의 첫 번째 분수령은 이달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돼 헌법재판소가 심판에 착수할 때다. 친윤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소추위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모든 과정에 참여했던 권 의원이 이번 탄핵심판도 가장 잘 방어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의원이 헌재의 기각 결정을 이끌어내면 가장 좋겠지만 심판 과정에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친윤계 사이에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 분수령은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해 내년 여름쯤 조기 대선이 결정될 때다. 용산과 친윤계 입장에선 권 의원이 원내대표 자리를 꿰차야 한 대표가 아닌 친윤계 대선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원내대표로서 권 의원의 핵심 역할은 한 대표에 대한 견제가 가장 큰 셈이다.
실제 최근 정치권에서는 과거 이준석 전 대표 때처럼 한 대표도 축출될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최고위원회에서 친윤계 김재원·김민전·인요한 최고위원에 더해 친한(친한동훈)계로 분류돼온 장동혁 최고위원까지 4명이 사퇴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한동훈 체제는 붕괴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 이 때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권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는 분석도 있다.
친한계 핵심인 신지호 당 전략기획부총장은 권 의원의 재등판에 “한 대표를 무너뜨리고 당권을 잡으려는 시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동훈과 ‘레밍(집단자살 습성이 있는 나그네쥐)’들은 탄핵에 찬성하고 유승민·김무성처럼 당을 나가라”며 한 대표의 사퇴와 탈당을 요구했다.
결국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향후 당권을 겨냥한 친윤계와 친한계의 헤게모니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윤계는 권 의원, 친한계는 김 의원을 각각 지지하지만 수적으로 친윤계가 우세해 권 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권 의원은 이날 친한계 반발을 의식한 듯 “상황이 수습되는 대로 바로 그만둘 것”이라며 원내대표 임기를 모두 채울 뜻은 없음을 시사했다. 또 한 대표 축출설에 “정말 모멸적이고 악의적”이라며 “한동훈 지도부가 중심이 돼 혼란을 헤쳐나가야 하는 마당에 붕괴는 가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권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가 될 경우 ‘권성동 추대론’을 사실상 반대한 한 대표의 리더십에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한 대표에게 책임론이 쏠릴 가능성이 높다. 당장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 탄핵에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여론이 분출할 수밖에 없고 “친한계에서 이탈표가 나왔다”는 친윤측 파상공세도 예상된다.
현재 탄핵 찬성 입장은 안철수·김예지·김상욱·조경태·김재섭 의원 등 5명이다. 여기에 김소희·배현진 의원이 표결 참여 의사를 밝혔고 김용태·우재준·진종오 의원 등도 표결 참여를 검토하고 있어 탄핵안 가결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특히 한 대표는 자신이 추진한 ‘조기퇴진 로드맵’에 대통령실이 부정적으로 나오자 친한계 의원들에게 “탄핵 표결을 당론으로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표결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확인돼 12·14 탄핵안 가결 후 책임론을 둘러싼 계파 갈등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당의 분열을 겨냥해 “국민이 피해를 입든 말든 나라가 망하든 말든 권력 찾기에만 혈안인 집단이 민주주의 국가 정당으로 존재할 가치가 있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