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보기] 예술, 실패하지 않는 혁명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렘브란트 판레인, 63세의 자화상, 1669년

렘브란트의 자화상 가운데 63세 때의 것이 단연 백미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상태지만 원래는 손에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음이 X선 촬영 결과 드러났다. 그의 인생을 지배했던 패기·야심·집착은 오간 데 없고 긴장과 강박이 남김없이 풀어진 표정 위로 텅 빈 관조의 시선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다.


예술은 예술적이기 어려운 인생에서 잉태되고 세계의 부조리를 견디면서 자란다.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보다 놓아두는 것에서 오는 질고 안에서 도약한다. 이것이 예술의 성장 공식이고 꿈과 해방을 숙성시키는 고유한 방식이다. 그러하기에 예술은 스스로를 주장하거나 선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하는 길을 택하지 않아도 된다. 타인을 설득하려는 집착은 더더욱 경계한다. 다만 사람들의 옆에서 그들의 동반자로 남기를 택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의 증언자로 남는 것으로 족하다 여긴다.


이런 예술만 규범 밖의 것들에 일탈의 딱지를 붙이기에 여념이 없는 강박의 사회를 치유하는 힘과 결부된다. 반대자들에 대한 승리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입증하는, 도덕적으로 낙후된 영역인 현실 정치의 진정한 대안이 된다. 거짓을 밝히는 데 혈안이 된 지식의 빈혈을 보라. 그것의 끝이 인간의 상실과 다른 것이기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는 언제나 승리를 거둔 것들에만 자비를 베푼다. 역사의 어떤 제국도 주변 국가들에 자애로웠던 적은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자비를 베푸는 힘은 약자의 손에 들려져 왔다. 세상이 예술을 키우는 게 아니라 예술이 집착과 강박으로 뒤범벅인 세상을 포용해온 것이다.


노 화가의 시선에는 선(善)과 지혜의 모습이 담겨 있다. 파산이 화려했던 모든 것들, 성공과 부와 명예를 휩쓸어가고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때, 노쇠한 육체로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던 그때의 시선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다른 이유를 대기가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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