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의 공석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지내다 귀국했던 최병혁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뒤늦게 후보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창군 이래 처음인 장관 직무대리 체제가 당분간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김선호 차관이 국방장관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국방부 장관으로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지명했다. 최 후보자는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한 직업 군인 출신이다. 최 대사는 육군사관학교 41기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세 기수 후배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 전 장관과 함께 윤석열 대선 캠프에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변 인사들이 강하게 만류해 뒤늦게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3성 장군 출신이자 4선 현역 의원인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에게도 장관 자리를 제안했으나 한 의원도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서 장관직을 수락할 수 있겠느냐”며 우회적으로 윤 대통령의 제안을 고사했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후임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찾지 못할 경우 장관 직무대리 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관례상 후임 장관이 지명되면 청문회를 거쳐 취임 전까지 전임 장관이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국방부 장관은 국가 안보와 직결돼 있어 안보 공백을 없애기 위해 이런 관례를 지켜왔다.
14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는 또 다른 변수다. 가결될 경우 군통수권 체계가 또 흔들릴 수 있다. 탄핵소추안 가결 시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군통수권을 넘겨받게 된다.
문제는 권한대행의 권한을 대통령 업무를 유지·수행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인지, 군통수권·인사권 등 주요 권한을 적극 행사해 후임 국방부 장관을 임명할 수 있는 것인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야당이 비상계엄령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찬성한 국무위원들도 모두 내란 가담자로 보고 있어 한 총리도 탄핵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어, 만약 한 총리 탄핵소추안까지 추가로 가결될 경우 이주호 사회부총리 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군통수권을 넘겨받게 되는 전례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대통령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체포나 구속될 경우에도 국군통수권이 유지될 지에 대한 판단은 군 내부에서도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장관 직무대리를 맡고 있지만 미국 국방장관과의 대화 등 고위급 채널에 임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어 조속히 후임자 임명이 필요하다”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등 장성들이 줄줄이 직무에서 배제되면서 핵심 지휘관들까지 공석인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미 연합 태세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미국은 계엄 선포 직후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 연습을 개최 하루 전날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우리 군 자체적으로는 여단급 이상 대규모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은 방문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및 장관 공석 사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는 최근 국민의힘 고위 인사를 만나 유사시 한국군 통수권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