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3차례 연속 정책금리를 인하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 2기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무역 전쟁’에 대한 불안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유럽 경기가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ECB가 내년 1월과 3일 각각 0.25%포인트의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ECB는 12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한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이사회에서 예금금리를 연 3.25%에서 3.00%로, 기준금리를 연 3.40%에서 3.15%로 각각 0.25%포인트씩 내렸다고 밝혔다. 한계대출금리도 연 3.65％에서 3.40％로 인하했다. ECB는 이들 세 가지 정책금리 가운데 예금금리를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짠다.

ECB는 올해 6월 정책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리며 1년 11개월 만에 금리 인하로 방향을 전환한 후 9월과 10월, 이번 달까지 세 차례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예금금리를 기준으로 올해 인하 폭은 1%포인트에 달한다. 이로써 미국과의 금리 격차는 1.50~1.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금리 인하의 배경에는 유럽의 경제 성장 둔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날 ECB는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0.8%에서 0.7%로, 내년 전망치 역시 1.3%에서 1.1%로 하향 조정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최근 지표를 보면 성장 모멘텀이 꺾이고 있다”며 “제조업은 여전히 위축됐고 서비스업 성장도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당선인의 재집권이 불러올 글로벌 불확실성도 유럽 경제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과 관련해 “통상 마찰 위험이 수출과 세계 경제를 약화시켜 유로존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무역 갈등이 커지면 유로존 인플레이션 전망도 더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가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ECB 정책 입안자들이 내년 1월과 3월 정책금리를 0.25%포인트씩 추가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비상시에는 더 큰 폭의 0.5%포인트 인하하는 ‘빅 컷’도 옵션으로 남아 있다”며 “다만 이러한 조치는 의도하지 않은 긴박함을 전달할 위험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도 ECB가 내년 상반기 네 차례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연달아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이 경우 예금금리가 1.75%에 도달하게 된다. 유로존의 중립금리를 2.0~2.5%로 보는 가운데 시장은 좀 더 공격적인 금리 인하가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알리

ECB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도 완화된 통화정책을 채택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트럼프 2기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스위스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1.0%에서 0.5%로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2022년 9월 이후 최저치다. 앙투안 마틴 스위스중앙은행 부총재는 “해외 상황이 스위스 경제의 주요 리스크”라고 말했다. 캐나다도 전날 0.5%포인트 빅 컷을 단행하며 올해 다섯 번째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알리안츠의 수석 분석가인 루도빅 수브란은 “유럽 경제가 이미 여러 내부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