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진목리 남사화훼단지 안쪽에 자리 잡은 한플라워 아울렛은 지난달 27~28일 내린 폭설로 큰 피해를 입었다. 폭설 둘째 날 오전 10시께 비닐하우스 16개 동 중 12개가 무너졌다. 습설(젖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비닐하우스 철골이 휘어지면서 2600평 정도의 천정이 안쪽부터 차곡차곡 무너졌다. 출하를 기다리던 동서양 난과 희귀관엽식물들이 그때 깔렸다. 나경렬(67) 한플라워 아울렛 대표는 압사 위험을 감수하고 아수라장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온전한 화초를 빼내 안전한 비닐하우스로 옮기다가 힘이 부쳐 허리를 폈다. 하늘에서 함박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40여 년 동안 과천에서 화훼농가를 하다 도시개발 바람에 밀려 용인으로 근거지를 옮긴 지 3년 만에 맞닥뜨린 천재지변 앞에서 그는 몸서리쳤다. 14일 오전 11시께 남사화훼단지에서 만난 나 대표는 최신 시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습설의 무서움을 실감했다고 털어놓았다. 화초는 사계절, 24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평생 제대로 쉬어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바빴다는 나 대표는 시설 붕괴 이후 이날까지 원치 않는 ‘강제 휴가’에 들어갔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화원에 나와 살아남은 화초들을 헐값에 팔아넘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했다.
15억 원 대 피해를 추산한 나 대표가 현재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다. 지난달 27~28일 용인시 평균적설량은 47.5cm를 기록하며 경기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용인시는 지난 5일 관내 화훼농가 등의 피해액을 436억 원으로 잠정 집계해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공식 건의했다. 이중 남사읍만 409농가에서 비닐하우스 935개 동이 붕괴하는 등 약 86억5300만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 제69조에 따르면 지자체는 일정 액수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도록 행정안전부에 건의할 수 있다. 지정되면 피해 복구비용의 50~80%를 정부로부터 보조 받을 수 있다. 국세나 지방세 납세 유예 등 일반피해지역 재난지원은 물론 건강보험료와 전기·통신·도시가스 등의 공공요금을 감면 받을 수 있다. 폭설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가들과 용인시가 목 빠지게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기다리고 있지만 정부 측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철거조차 못하고 있는 처지의 나 대표는 12·3 계엄사태가 재난의 크기를 더 키우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피해가 농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피해가 발생한 지 이미 16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시에서 현황 파악한 것을 빼놓고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이 없다”며 “재난이 왔는데 계엄사태로 대통령이 일을 못한다면 국무총리가 대신 해야 하고, 국무총리가 안 되면 장관, 차관이라도 적극 나서야 하는데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비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와중에 인사권은 행사한다고 들었다”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폭설 피해 지역 국민은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더 커질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그는 “철거와 폐기물처리, 재시공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재시공을 위한 철골도 이미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인건비는 일당 30만원까지 치솟았다. 앞으로 일이 몰리면 더 할 것이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내쉬고 있다”고 말했다.
한플라워 아울렛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 떨어진 방아리 황성재 동일화원 대표는 정부 지원을 기다릴 수 없어 자비로 철거를 시작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번 폭설로 온실 전체 약 1400평이 무너졌는데, 600평을 철거하는 데만 14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영상 15도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금전수(돈나무)를 전문적으로 키우기 때문에 피해는 가중됐다. 천정이 무너지며 보일러 배관이 터졌기 때문이다. 값비싼 금전수 약 10만 주가 하루 사이 모두 얼어 죽었다. 최소 7억 원으로 추정되는 피해액 중 화초 피해는 포함되지 않았다. 황 대표는 “우리 같은 경우, 하우스는 보험이 가입돼 있지만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이 지역 농가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근 봉명리에서 명성식물원을 운영하는 김명규(61) 대표는 비닐하우스 2500평 중 절반가량이 붕괴하면서 7억 원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수국과 관엽식물을 주로 재배한다는 그는 화초의 70%는 운 좋게 다른 비닐하우스로 옮길 수 있어 타 화훼농가에 비해 피해는 덜한 편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속한 피해복구 위해 정부가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즉시 해야 한다”며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다. 눈은 얼마나 더 올지 모르고, 날씨는 더 추워진다. 때를 놓치면 이 일대 화훼 농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비상계엄 사태로 시국이 너무 어수선한데 여야 모두 자기들 잇속 차리기만 바쁜 것 같다. 국민이 있어야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이 있는 것 아닌가. 그저 싸움만 하니 안타깝다. 야당도 너무 비판만 하면 정부가 일 못한다. 당장 특별재난지역을 신경 쓰라”고 요구했다.
남승동(57) 남사난사랑 회장은 “남사읍에는 보험 미가입 화훼농가가 절대적으로 많지만 농작물재해보험은 장미, 백합, 국화, 카네이션 4개만 된다”며 “쑥갓, 미나리 같은 것도 다 되는데 화훼 380개 품목은 경영미평가로 농진청에서 안 해줘서 보험을 들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재난을 계기로 정부가 농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복구 메뉴얼을 만들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경제신문이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께까지 3시간 여 동안 남사화훼단지에서 만난 이들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오후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표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국가의 혼란이 일상에 미치는 악영향을 실감하고 있다며 현재의 무정부 상황만은 해결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폭설이나 비상계엄 사태 모두 이들에게는 극복 해야 할 현실 속 재난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오후 5시께 국회는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물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