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자유무역 시대는 끝났는데…국내 산업보호에 미지근한 산업부·기재부

트럼프, 강력한 관세 정책 예고…'보호주의 강화' 예상
WTO 무력화…보호무역주의 시대로 회귀
미국·일본·EU, 반도체 보조금 직접 지원…한국만 소극적
국내 산업 위기감 큰데…정부는 안 보여


자유무역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2016년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흐름은 정파가 다른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거의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의 최대 위협국인 중국에 대해 전기차, 반도체 등 첨단 공급망 관련 일부 분야에 대해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 인상 조치를 임기 내내 취했습니다. 적게는 25%, 많게는 100% 가까이 대중국 관세를 부과한 겁니다. 거기에다 WTO 상소기구를 계속 무력화시켰고, 칩스법과 IRA를 통해 반도체와 전기차에 대한 ‘미국 내 생산’을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미국 무역·통상정책의 패러다임이 트럼프를 전후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GATT와 WTO 질서, 상호 호혜성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무역 질서의 시대는 끝이 났고, 그 대신 안보와 직결되는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 인상과 보조금 지급 등 보호무역주의 시대로 완전히 전환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치권에서는 자유무역이 미국의 이익과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 가격을 최소화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미국이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감수하고, 지정학적 적대국인 중국에게도 무역수지 적자폭을 줄이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미국 제조업 기반이 많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실질 임금 감소와 실직으로 이어진 미국 제조업 근로자의 불만과 불안을 파고들은 트럼프는 잇따른 대선 캠페인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며 미국 중산층과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80년 이후 미국 제조업 부문의 고용 감소세와 실질 임금 상승률의 정체가 이른바 ‘자유무역’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미국 정가를 비롯해 시민들 사이에서 퍼지게 되었고 심지어 트럼프와 결이 다른 바이든 행정부에서조차도 무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장 미국 바이든 행정부만 해도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시 390억 달러를 ‘반도체 보조금’ 형태로 직접 지급하고, IRA와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에 대한 대폭적 지원으로 제조업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유턴할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철강과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상계 관세나 관세 인상 등 관세 장벽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웃 국가인 일본도 인공지능과 반도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과 전력 반도체 양산 투자에 6조 엔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EU도 반도체법을 통과시켜 2030년까지 민간 및 공공에서 430억 유로를 지원금 형태로 투입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데 가능한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반도체에 대한 정부의 직접 보조금 지급은 윈칙적으로 WTO 규정 위반입니다. 이처럼 자유무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고 있는데다 국가의 성장은 보호주의와 보조금의 산물이라는 인식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주요국은 앞다퉈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강력한 보호장벽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행정 관료와 정치인들은 급변하는 무역·산업·통상 흐름에 대한 상황 인식이 매우 안일하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내 산업 보호에 미지근한 모습을 보인 겁니다. 올해만 해도 송전망과 용수로 등 사회간접시설·인프라에 대한 지원 대책만 내놓았을 뿐 반도체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이 또 빠졌습니다. 기재부는 기능이 무력화된 WTO 조항 위반 이유를 들며 직접 보조금 지급을 여전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산 철강의 저가 밀어내기 공세로 오래 전부터 국내 철강 업체가 심각하게 휘청이고 있는데 내년 2월에서야 반덤핑 관세 부과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미 포스코그룹은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을 폐쇄하고 현대제철은 포항 2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한국 제조업의 핵심 기반인 철강업체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데 철강 업체 보호를 위한 조치가 지나치게 늦은 것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거기에다 바이든 행정부조차 동맹국인 한국 철강 제품에 지난해 최고 6.71% 상계 관세를 부과했는데, 한국 정부의 대책은 뚜렷하게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정부는 2024년 2월에 WTO 협정에 합치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미국에 전달했는데 WTO 체계가 이미 무너졌는데 아직도 ‘WTO 협정’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산업부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8월 통상정책 로드맵을 내놓았는데 FTA 네트워크를 85%에서 90%로 확대한다는 것을 주요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미 자유무역 시대는 저물어가는데 FTA 경제운동장을 세계 2위에서 1위로 올라가는 것은 2010년부터 계속 이어져온 FTA 확대라는 기존 업무 관성과 기조에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관세 인하를 목표로 하는 FTA가 점차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차별적인 규제 요건과 같은 비관세 장벽을 상당수 국가들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직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들은 경제규모가 매우 작거나 영세해 통상의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과거 미국이나 EU 등 주요국과 FTA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WTO 상소 체계와 규칙 기반 국제 질서가 여전히 작동되었던 2010년 초반에 나와야 할 통상 목표가 2024년에 나온 점은 의아한 대목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산업부를 비롯한 국내 경제 부처의 모든 관심은 직접 보조금 지급과 상계·반덤핑 관세 부과 등을 통해 한국의 핵심 제조업 분야를 육성하고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겁니다.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정책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나올 산업정책방향과 통상로드맵 등은 보호주의로 회귀했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파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