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증시를 덮쳤던 불확실성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입니다. ‘산타 랠리’는 커녕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현 시점, 증시가 상승할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한 상황인데요. 정치적 국면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에 들어왔다는 것은 주식 시장에 호재이지만 높은 원·달러 환율, 정책 공백, 통상 조건 변화, 이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추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동력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연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결사를 자처한 윤 대통령을 외신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몸소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걸 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증시 전망과 현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 상황 등을 점검해보겠습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코스피지수는 2428.16으로 출발해 2.73% 증가한 2494.46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 이후 주말 간 탄핵 소추가 부결되면서 9일 지수가 2.78% 하락하는 ‘블랙 먼데이’를 겪었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등장하면서 하락폭을 회복, 결국 상승 마감한 것입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가 폐지된 것도 증시 상승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증시는 지난주에 계엄·탄핵의 하락분을 모두 회복한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추가적인 반등 여부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는 상황입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탄핵 국면으로의 진입과 계엄 사태 수습 과정이 가속화되며 안정화 국면으로 전환됐다고 본다”며 “코스피는 2016년 탄핵 국면과 유사하게 정치적 불확실성 감소에 따른 반등이 기대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반대 측은 탄핵소추안 가결이 이미 선반영 돼있었고, 증시의 기초 체력은 나아진 것이 없어 반등이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이전부터 국내 증시를 떠나기 시작했다”며 “당분간 수급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경기 둔화…韓 투자 비중 축소”
과거 한국의 탄핵 사례를 살펴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인용될 때까지 증시는 상승한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증시는 하락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가결 당시 코스피지수는 2024.69, 파면을 선고한 2017년 3월 10일 지수는 2097.35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지수가 3.59% 상승한 것입니다. 반면 노 전 대통령 당시에는 탄핵안이 가결된 2004년 3월 12일 848.80에서 기각된 5월 14일 768.46로 9.47% 하락했습니다. 이 같이 상반된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시에 영향을 끼치긴 하나 그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다고 지적합니다. 박 전 대통령 당시에는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기였지만 노 전 대통령 때는 중국의 긴축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정치적인 상황보다 경기 상황이 중요하단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다만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제의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생긴 국정 공백으로 한국의 경기 둔화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앞 두고, 통상 대책을 수립해도 부족할 상황에서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느라 대외 변수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실제 외국계 증권사들은 반도체 경기 둔화, 미국의 관세 정책 등에 따라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 축소를 권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홍콩계 글로벌 증권사 CLSA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내년 한국 비중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비중 축소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책 공백에 따라 경기 둔화의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밸류업 정책도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미 주주환원정책에 나서겠다고 공시한 기업들의 경우,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외면하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공시를 하려고 고민하던 기업들입니다. 정권이 바뀌게 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공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밸류업 공시를 준비하던 상장사의 한 관계자는 “최대한 공시를 빠르게 하려고 했는데, 현 정국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공시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업 참여에 더욱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한 밸류업 문화가 확산되기에는 어려운 조건인 것입니다.
금융위원회가 거래소가 추진하던 이른바 ‘좀비 기업’에 대한 퇴출도 늦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거래소가 올 7월 자본시장연구원에 발주한 ‘증권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용역’의 기한이 당초 이달에서 내년 1월로 연기됐습니다. 연구용역과 관련된 복수의 관계자는 “최근 정치적 국면이 복잡하다 보니 연구용역 기한이 연기된 측면이 있다”며 “추가로 연기될지 여부는 다음 달 상황을 보고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는데요. 해당 연구의 기한이 연기되면서 실제 개선된 퇴출제도가 시행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초 금융위와 거래소는 이번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각 시장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진행해 제도를 수정·보완 후 시행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연구용역이 밀리면서 이런 과정이 모두 순연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이 연구는 금융위원회와 거래소가 좀비 기업의 퇴출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발주한 용역입니다. 상장사가 2년 연속 감사 의견 부적정(의견 거절, 한정 포함)을 받을 경우 즉각 상장폐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감사 의견 미달 사유가 발생해도 이의신청 등을 통해 거래 정지까지 최대 20개월이 걸렸지만 앞으로는 조건 충족 시 즉각 퇴출하겠다는 것입니다. 좀비 기업을 적극적으로 퇴출,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노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분위기 반전 모멘텀 될까
밸류업 지수 추가 편입을 통해 밸류업 동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일부 해소될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거래소는 16일 밸류업 지수 ‘특별 리밸런싱’을 실시합니다. 이번 리밸런싱에서 편출은 없으며 5개 안팎의 종목이 신규로 편입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서는 주주 환원에 적극적이었던 금융·통신주를 위주로 추가 편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별 리밸런싱을 실시하게되면 지수는 105종목으로 이뤄지게 되고, 내년 6월 정기 변경 때 밸류업을 공시하지 않은 기업을 편출해 100종목을 유지할 계획입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장 이번 특별 리밸런싱으로 밸류업 정책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밸류업은 여야가 공감하는 정책인 만큼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간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