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교육, 입시에 지배돼선 안돼…수능 객관식 재검토 필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수시 모집시기 조정해 고3 2학기 교육과정 입시에 반영해야
오지선다형 시험, 자기주도 학습에 어떤 영향 주는지 고민
성적만 높이는 교육 아닌 배우는 기쁨·자신감 느끼게 할것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대입 제도 개편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탐구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 경쟁으로 고교 교육의 본래 역할과 가치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이제 초·중·고 교육이 대학 입시에 종속되지 않고 본연의 가치를 실현하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서울시교육청 본청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등학교가 더 이상 입시를 준비하는 곳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과거 교육청 차원에서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 충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한 면이 있지만 앞으로는 교육감으로서 적극적으로 논의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정 교육감은 고교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이 사실상 입시 준비로 대체된 현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수시·정시 모집 시기를 조정하거나 고교 2학기 교육과정을 입시에 반영하는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정 교육감은 “지금까지 대학 입시가 고교 교육과정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앞으로는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돼 대학 입시와 대학교 1학년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육감은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초·중·고 교육과 대학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달 12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들과의 토론회를 열어 초중고 교육의 변화가 대학 입시 구조와 서열화된 대학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논의하고 대학이 교육계 전반에 도입할 수 있는 변화를 토의했다. 또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객관식 오지선다형 문항 제도의 적절성과 교육적 효과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수능과 같은 객관식 시험이 자기주도 학습과 사고력을 키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런 방식이 우리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했는지, 아니면 오히려 방해가 됐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육감은 대학은 초·중·고 교육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대학과의 소통과 협력은 대입 개혁을 넘어서 한국 교육 전반의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단순히 입시 제도를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육계가 새로운 방향성을 공유하고 입시 문화도 함께 바꿔야 한다”며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제도적·구조적·문화적 해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육감은 “대입제도 개선이나 대학구조 개혁이 교육감의 권한을 벗어난 일이라는 일부 우려가 있지만 대입 문제가 논의될 때 유·초·중등교육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으로서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화를 거쳐 대학 교육 구조 개혁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 교육감이 추진할 정책은 모두 ‘조용하지만 거대한 전환’이라는 교육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극단적인 대립보다는 설득과 협력을 통해 교육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공감’을 적극 발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육감은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이 공존을 강조한 것과 달리 공존보다 적극적인 개념인 ‘공감’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배려와 인정, 그리고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같은 정서적 표현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이러한 정서적 요소는 교육적 가치와 연결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육감은 학생들이 학업 성취와 행복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교육 정책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그는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단순히 성적만 높은 교육이 아니라 삶에서 배우는 기쁨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교사들의 자긍심 회복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교사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육감은 ‘어떤 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서울과 대한민국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학생들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교육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넓히고 굳건히 다지는 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단순한 성과를 넘어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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