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여인숙이 미술관으로 부활했다

나주정미소…나주 지역 첫 미술관 개관
인천 배다리 여인숙 골목의 동네미술관
문예위(ARKO), 작은미술관 지원사업
10년 누적 103곳 작은미술관 개관
누적관객 65만명 돌파…내년 10주년

1920년대 나주정미소를 활용하려는 읍성마을관리협동조합의 재생 노력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의 작은미술관 조성 지원사업이 힘을 보태 지난 10월 나주작은미술관이 개관했다.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미소가 미술관이 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호남지역 최초의 정미소로 지어진 전남 나주시 성북동의 ‘나주정미소’가 지역 최초의 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나주작은미술관’은 읍성마을관리협동조합이 나주시를 대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의 ‘2024년도 작은 미술관 조성 및 운영지원 사업’에 응모해 선정되면서 지난 10월 개관했다. 개관전으로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소재로 한 기획전 ‘흔한동네풍경’이 열렸고, 성탄절을 앞둔 지금은 ‘크리스마스 ON’ 전시가 한창이다. 나주정미소는 1980년대 이후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다 2016년부터 나주 읍성 도시재생사업이 추친되면서 복합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이번 나주 작은미술관 개관은 나주의 첫 미술관이자 주민들의 노력과 행정적 지원이 맞닿아 이뤄낸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나주작은미술관의 기획전 전시 전경.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15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작은미술관 조성 및 운영지원’ 사업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사업의 추진 배경은 한국 높은 경제 수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미술관 수에서 비롯했다. OECD 가입 국가들의 박물관·미술관 1관당 평균 인구 수는 4만 명인 것에 반해 2015년 당시 우리나라 박물관 1관당 인구 수는 6만 5800명, 미술관 1관당 인구는 21만 8400명이었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미술관과 박물관을 더 확보해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그간 뮤지엄 수가 꾸준히 늘었음에도 2023년 기준 박물관 1관 당 인구는 5만 6300명, 미술관 1관 당 인구는 약 18만 명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의 미술관 및 문화 시설 대부분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지방 주민들의 문화 접근성은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 격차 해소와 미술 향유 기회 확대, 공공 유휴공간을 재활용한 지역 활성화와 문화 교류 거점지역 조성 등을 목표로 ‘작은미술관’ 사업을 시작했다.



자료출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료출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첫 해 6곳으로 시작한 작은미술관 조성 사업은 미술 문화에 국민적 관심이 급증한 2020년부터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올해는 작은미술관 신규 조성과 기존 작은미술관 전시 활성화 등 10곳을 지원했고, 연간 관람객 9만 여 명을 끌어 모았다. 10년 누적치를 살펴보면 총 103곳의 작은미술관을 지원했고, 누적 관람객 수는 65만 4400명에 달한다.



인천 동구 배다리 여인숙 골목에 위치한 '배다리 잇다 스페이스 작은미술관'은 1930년대 여인숙 건물을 리모델링 해 2022년 개관했다.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천 동구에 위치한 ‘배다리 잇다 스페이스 작은미술관’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곳 ‘배다리 여인숙 골목’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여인숙 자리였고 6·25전쟁 이후에는 피난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여인숙의 역사에서 서민 삶의 애환을 발견한 이영희 잇다스페이스 대표가 리모델링과 함께 공간 재생을 추진했다. 여인숙의 작은 방들을 나눴던 옛 기둥을 그대로 남겨놓은 이곳에서 2022년 작은미술관이 개관했다. 지역 작가들과의 협력,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 지역 문화활동의 거점이 됐다는 점에서 작은미술관의 이름인 ‘잇다’가 빛을 발하는 중이다. 꾸준히 기획전을 열고 있는 이 대표는 “걷다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공간이지만 이 안에는 100년의 세월과 현대적인 미술품이 함께하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공간까지도 작품이라 생각하고 봐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술관 밖 ‘쇠뿔마을 로드갤러리’는 인천동구 주민들과 공유하는 열린 미술관으로 이용되는 중이다.



인천 동구 '배다리 잇다 스페이스 작은미술관'은 1930년대 여인숙 건물을 리모델링 해 2022년 개관했고 지역과 협력한 기획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은미술관’ 지원 사업은 폐교 등 지역 유휴시설을 새롭게 미술관으로 탈바꿈 하는 ‘신규조성지원’과 최근 2~3년 내 개관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작은미술관의 ‘지속운영지원’, 개관한 지 4년 이상 된 작은미술관의 ‘전시활성화 지원’으로 단계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측 담당자는 “작은미술관의 이름처럼 등록미술관이거나 화려한 소장품을 가진 큰 미술관은 아니지만 작아도 친밀한 ‘생활권 내 미술공간’을 조성해 모든 국민이 풍요롭게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면서 “공간 조성만이 아닌 콘텐츠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지역과도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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