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불황으로 평택과 용인 등 반도체 전진기지의 부동산 시장도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가 투자 축소, 연기를 결정함에 따라 이와 맞물려 돌아가는 지식산업센터·오피스텔 등 인근 배후 지역의 상업용 부동산 생태계는 공실의 늪에 빠졌다. 반도체 클러스터만을 보고 앞다퉈 공급됐던 아파트 시장 역시 악성 미분양에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평택고덕국제화계획지구에서 지식산업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토지를 공급받은 A 시행사가 계약금 납부 이후 중도금을 연체해 최근 토지 계약이 해지됐다. A 시행사는 2022년 LH가 공급한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해창리 1276-2번지를 분양받았다. 공급 면적은 8127㎡, 가격은 160억 5100만 원이다. LH의 한 관계자는 “계약금 납부 이후 중도금 일부를 납부하다 연체돼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며 “대주단으로부터 기한 이익 상실 통보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A 시행사는 해당 부지에 LE192라는 지식산업센터 분양을 추진하다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접한 1276-1번지(5319㎡) 역시 또 다른 시행사가 110억 6500만 원에 분양받았지만 이 역시 중도금 연체로 LH와 토지 계약이 해지됐다. 이 부지는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2㎞가량 떨어진 곳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따른 간접 고용 유발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돼 지식산업센터로 각광받으며 우후죽순 공급이 진행됐던 곳이다. 평택의 한 지식산업센터 관계자는 “평택의 지식산업센터 공실률이 50% 이상”이라며 “당초 계획보다 분양가를 떨어트려도 입주 기업을 찾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 용인의 지식산업센터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 용인에 조성 예정인 지식산업센터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축하금 지급을 조건으로 내걸고 분양을 시도 중이지만 쉽지 않다. 한 지식산업센터는 계약금이 분양가의 5%이지만 계약 축하금으로 3%를 지급해 사실상 실계약금으로 2%만 내면 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평택 등 반도체 클러스터 인근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 악화의 원인은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꼽힌다. 최근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에 지으려던 P4 공장 등의 완공 시점을 늦췄다. P4 공장 일부 시설의 경우 빠르면 올해 10월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수급 조절에 나선 삼성전자가 완공 시점을 내년으로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완공 시점이 늦춰지고 공사 인력 등도 빠져나가면서 인근 상권 역시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산업센터114를 운영하고 있는 조지훈 알이파트너 대표는 “사실상 삼성전자 한 곳을 믿고 지식산업센터를 짓고 분양을 시도했던 곳들이 많다”며 “반도체 업황 부진과 낙관에 기대한 수요 전망 등으로 준공하고도 미분양에 시달리는 지식산업센터가 많은데, 너무나 많은 공급 과잉으로 결국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거 시장도 마찬가지다. 평택 지역의 아파트 시장은 미분양의 무덤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통계청 미분양 주택 현황을 분석해 발표한 연도별·지역별 미분양 주택 현황 점검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평택시가 3159가구로 경기도 전체 미분양 물량의 33.0%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올해 들어 평택에서는 분양 단지 7곳 중 6곳에서 미분양이 발생했다.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평택의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2.72%로 하락률 1위인 이천 -3.46%, 2위 안성 -3.29%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실제 평택 우미린레이파크 전용 84㎡ 가격은 고점 대비 50% 가까이 하락했다. 2021년 6억 2000만 원 고점을 찍었지만 11월 3억 2000만 원에도 거래됐다. 평택지제역동문굿모닝힐맘시티 전용 84㎡도 2021년 6억 원에 거래됐지만 현재 3억 6000만 원으로 급락했다. 용인도 상황은 비슷하다. 용인 기흥구의 아파트 가격 역시 -0.29%를 기록했다. 경기도 전체 아파트 매매가격 평균 변동률이 0.57로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문제는 평택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의 반발, 지방자치단체 소송 등으로 공장 가동을 위해 필요한 전력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부지 선정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송전선로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점은 다행이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는 지난달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평택과 용인 산단에 들어갈 송전 인프라 구축의 총사업비 3조 원(용인 2조 4000억 원·평택 6000억 원) 중 송전선로에 대해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비용을 분담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력 등 인프라 구축을 속도감 있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갈등이 극심하다”며 “현재 정치적 혼란이 큰 데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반도체 지원에 대한 정책의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