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동백은 지고

이순화


당신은 막막한 바다를 보고 나는


당신 열두 자 깊은 눈빛을 보고 있네 당신은


쓸쓸한 바다의 맥을 짚고 나는


당신 울멍울멍한 고독을 살피네



동백은 지고 동백 지고


물새마저 흰 날개를 접은 삼양


검은 바다는 창백한 등대 불빛을 감추고


떨기나무 불온한 그림자를 감추고


벼랑 같은 고독을 감추고


아득해져서는


어찌해 볼 수 없도록


아득해져서는



나는 당신 불경한 맥을 짚고


당신은 내 아찔한 심장소리에 눈을 씻네




당신도 동백이 지는 것을 보고 있었군요. 내 눈빛 속 너울거리는 바다가 막막한 줄을 알고 있었군요. 물새도 함부로 날 수 없는 바다인 것을 알고 있었군요. 내 불온한 눈빛 속 벼랑 같은 고독을 읽고 있었군요. 바다의 맥박인 줄 알았더니 당신의 심장소리였군요. 불온이 때로 정의라는 걸 알고 있었군요. 불경이 때로 최대의 예의라는 걸 알고 있었군요. 아득한 상념의 소실점을 여기로 당겨준 당신, 동백 진 자리엔 씨가 여물겠군요.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