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인하와 동결을 거듭하는 속도 조절기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은 내년에는 기준금리가 반기에 한 번씩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는 금리 인상이 재개될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미국 경제 성장세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연준이 금리 인하를 지속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미국 경제는 성장을 지속하면서 금리 인하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의 ‘GDP나우’에 따르면 미국의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3.1%로 3분기 성장률(2.8%)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약 1.9%)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17일(현지 시간) 발표된 미국의 11월 소매판매지수는 이 같은 성장 전망을 뒷받침한다. 미국 11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7% 늘어 10월(0.5%)보다 증가 폭이 커졌다. 시장 전망치(0.5%)도 상회했다. 상품 위주의 소비 현황을 집계하는 소매판매는 전체 소비 지출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마켓워치는 “미국인들은 엄청난 돈을 쓰고 있고 이는 경제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낮은 실업률과 늘어나는 소득, 기록적인 주식시장 덕분에 소비자들은 지출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 금융 여건도 유동성이 풍부했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준이다. 시카고연방준비은행이 105개 지표를 종합해 산정하는 국가금융여건지수(NFCI)는 12월 첫째 주 -0.65를 기록해 2021년 7월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낮을수록 기업이나 가계가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거나 소비하기 좋은 여건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 인하를 서두를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연준 내부 매파들은 인하가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4~6년간 고착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예고된 변수다. 뱅가드의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조 데이비스는 “미국 경제가 지금까지 연착륙을 할 수 있는 배경은 노동 생산성이 늘고 이민으로 노동 공급이 확장되는 등 경제의 공급 측면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며 “관세나 이민정책의 변화는 공급 우위 국면을 뒤집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변수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업데이트된 점도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새 정부의 정책 전망을 미리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는 내년 중반에 접어들수록 연준이 트럼프 리스크를 반영해 금리 인하 횟수 전망을 다시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경제 매체 배런스는 “연준은 새 행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면서 내년 상반기에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장의 초점은 속도 조절 여부가 아닌 속도 조절 폭에 맞춰져 있다. 블룸버그가 이달 6~11일 50명의 이코노미스트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년 3월과 6월, 9월 등 총 세 차례의 금리 인하를 전망하고 있다. 내년 말 3.5~3.75%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 선물 시장은 2차례만 금리가 내려가 내년 말 금리가 3.75~4.0%일 것으로 보고 있다.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이달 초 “현재 금리가 경제를 누르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높은 폭의 금리 인하에 부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내년에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알리안츠의 수석경제자문인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금리 인상을 포함한 (정책) 유턴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연준이 트럼프 정책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엘에리언은 “불가피한 전환점을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연준은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