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청룡(푸른 용)의 해’가 저물어 가고 을사년 ‘청사(푸른 뱀)의 해’가 성큼 다가왔다. 밝아올 새해는 푸른 기운을 띠며 지혜롭게 변화하는 뱀의 해라는 것이 주역 학자들의 풀이다. 흔히 뱀은 두려움과 징그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민첩성과 재생·변화의 상징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조화로운 변화를 이루는 지혜, 새로운 시작과 치유의 상징으로 통하는 푸른 뱀도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예기치 않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푸른 뱀의 해에는 급변하는 대외 변수를 대비하지 못해 큰 시련을 겪었던 적이 많았다. 120년 전 일제에 의한 외교권 박탈 등 본격적인 국권 침탈에 시달린 계기가 된 을사늑약이 대표적인 경우다.
푸른 뱀의 해가 아무리 지혜를 뜻하는 긍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큰 대가를 치른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때일수록 날카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아채는 푸른 뱀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이를 스네이크 센스(Snake Sense)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푸른 뱀의 여러 특성에 착안해 을사년의 트렌드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잡식성의 ‘옴니보어’, 아주 보통의 하루를 원하는 ‘아보하’, 소비자의 창의성 발휘 여지를 남겨놓는 ‘토핑 경제’, 자기 계발을 뜻하는 ‘원포인트업’을 꼽았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소비자와 기업의 ‘기후 감수성’, 다문화 국가로의 진화라는 ‘그라데이션K’ 등도 내년 트렌드로 들었다.
이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극도의 혼란에 빠진 지금 우리에게 푸른 뱀 같은 지혜가 절실하다. 다같이 스네이크 센스를 발휘해 국가적 리더십을 다시 세우고 글로벌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도전하는 자세로 민감하게 변화의 신호를 포착해 유연하게 대응해야 희망찬 새해를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