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수련기간과 시술 횟수를 공개한다면 어떨까요? 누구나 시술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받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박종재(사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19일 ‘소화기 내시경 세부전문의’ 취득 조건에 관한 질문에 이같이 되물었다. 주기적인 내시경 검사는 위암과 대장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40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2년마다 위내시경 검진을 제공하고 있다. 50세부터 연 1회 무료로 제공되는 분변잠혈검사의 양성 판정자는 대장내시경도 지원된다. 20~30대를 중심으로 대장암 발병률이 급증세를 보이자 대장내시경을 국가검진 기본 항목으로 넣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올 상반기 종료된 시범사업 결과 ‘대장암의 씨앗’인 선종 검출률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르면 2026년께 국가암검진으로 반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럴 때일수록 내시경검사의 질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내시경 교육, 시술 경험 등으로 인증의사 자격을 부여하는 권한 확대 검토에 나섰다. 종전까지 내시경 관련 학회 두 곳만 갖고 있던 권한을 외과, 가정의학과까지 열어주려는 움직임이다. 박 이사장은 “고난도 시술을 30년 가까이 시행해 온 내시경 대가들도 ‘할수록 어렵다’고 말한다”며 “갈수록 다양해지는 내시경 술기와 판독 능력을 키우고 우발적인 사고나 합병증에 대처할 수 있으려면 인증 요건을 강화해도 모자란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대장내시경의 국가암검진 확대를 검토 중인 중차대한 시점이기에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그는 “자칫 진료과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까 조심스럽다”면서도 “국가암검진 내시경을 (소화기 내시경) 세부전문의만 시행해야 한다는 제한이 없는 상황에서 인증의 문턱을 낮추면 감염·천공·출혈 같은 합병증이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면허를 소지한 경우 침습적인 시술인 내시경을 시행하는 데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다. 반면 소화기내시경 세부 전문의 취득 과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 등 주요 임상과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도 학회가 매년 엄격한 절차를 걸쳐 선정하는 수련병원에서 일정 시간 이상 교육·훈련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위를 포함한 상부 위장관내시경 1000회, 대장내시경 150회 이상에 치료내시경의 기본인 지혈술 10회, 용종절제술 10회 이상이 필수사항으로 포함돼 있고 응시 기회도 1년에 한 번만 주어진다. 이마저도 5년이 지나면 갱신해야 한다.
박 이사장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매년 300명이 조금 넘는 소화기 내시경 세부전문의가 배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인원이 1만 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검진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에서 대장내시경의 대표 합병증인 대장 천공 발생률이 0.01%, 출혈이 0.06%에 그친 것도 소화기 내시경 세부전문의가 88%를 차지하는 등 시술 자격을 까다롭게 관리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일반의에 비해 소화기 내시경 세부전문의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술 건수가 많을수록 합병증 발생률이 낮고 선종 또는 암 발견율이 높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하고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인증 기준을 종전보다 강화하고 소화기 내시경 세부전문의 여부, 시술 횟수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단순히 내시경 검진을 받는 게 능사가 아니다. 같은 병변을 보더라도 조기 위암·대장암의 징후를 놓치지 않으려면 고도로 숙련된 의사가 필요하다”며 “안전하고 효과적인 암 검진 환경이 지켜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