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최정예 첩보부대는 어쩌다?…계엄 투입된 정보사령부 ‘탄생과 임무’는[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1948년 육군 정보국 정보대 1과 ‘시초’
1999년 3월 국방정보본부 예하 ‘편입’
해외첩보 중 군사·안보 분야 정보 수집
블랙요원인 ‘공작원(공작관)’ 핵심 역할

정보사령부 부대 마크 및 부대훈.

12·3 비상계엄 당시 주요 지휘관으로 중 한 명으로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내란 등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공수처는 문 사령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전날 발부받아 18일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과 합동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문 정부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사 요원을 투입한 혐의와 계엄 이틀 전인 12월 1일 경기도의 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부하 2명과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을 사전에 기획해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만나 선관위 서버 확보 문제 등을 미리 논의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특히 유사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포함해 북한군 지휘부를 축출하는 참수부대 핵심 병력인 북파공작부대(HID) 요원들을 정치권 주요 인사 체포 관련 작전에 투입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 과정에서 군 병력을 동원한 주요 적폐 세력으로 꼽히는 흑역사를 쓰게 됐다.


정보사령부는 대한민국 국군의 해외정보 담당 정보기관인 첩보부대다. 해외정보 중에서도 주로 군사정보 수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부 방첩 업무도 수행한다. 북한의 정찰총국가 역할이 유사하다.


국군 최정예 첩보부대가 어쩌다 실패한 친위 쿠데타에 동원돼 사령관을 포함해 정보사 핵심 지휘부가 보직 해임과 수사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일까.


정보사령부는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방정보본부(중장급) 산하에 설치돼 있다. 신호·정보를 관장하며 대북첩보를 수집하는 ‘777사령부(소장)’와 함께 국방정보본부의 관리·지휘를 받는다.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으로부터도 정보 예산 및 관련 업무안을 기획·조정받고 주요 작전의 경우 함께 조율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사령관은 소장이 맡는다. 부대 조직과 인원 등 은 군사기밀 Ⅱ급에 해당돼 업무 보안상 대외 노출을 피하기 위한 대외용 위장 명칭과 사무실을 사용해 속칭 회사(Company)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 병무청

국군의 첩보부대는 육군에서 처음 시작됐다. 육군 예하 정보부대는 1946년 1월에 군정청 국방총사령부 정보과로 발족했다. 그해 8월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을 거쳐 11월말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대로 개편됐다.


이 조직이 입수된 정보를 분석·판단하는 정보대 1과다. 이후에 육군 정보대(MIG)로 개편됐다. 1950년 7월에 육군본부 정보국 내에 공작과가 만들어져 첩보를 담당하는 2과(영문약자·HID)로 불렸다가 1951년 3월 독립된 첩보부대가 됐다.


그러다 첩보분견대본부(HID)는 1961년 육군 첩보대(AIU)로 개칭했지만, 1972년 정보대(MIG)와 첩보대(HID)를 통합되면서 지금의 정보사령부의 시초인 육군정보사령부(AIC)가 만들어졌다.


해군 예하 정보부대는 1948년 9월 해군 작전국 내 정보과로 발족해 1955년부터 자체적으로 UDU(해상특수)요원을 선발했다. 1970년 이전까지 정보부대(NIU) 내 해상정찰대의 UDT요원들을 해군첩보 수중파괴단(UDU)이라 불렀다. 이후 UDT부대에서 북파공작원을 직접 양성 후 해군 정보부대(NIU)에 전속했다. 1971년 5월 5일 해군첩보부대령에 의해 UDT교관단으로 구성된 해군 첩보부대 교육대가 설치되면서 공식적으로 해군 내 정보부대(UDU)라고 불리며 해군 첩보부대로서 활동했다.


공군 예하 정보부대는 1954년 9월 미국 극동 공군이 일본으로 이전하면서 미 6006부대가 없어지면서 공군 제20특무전대(AISU)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아 정보부대 역할을 했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명 ‘실미도 부대’라 불리는 684부대가 바로 제20특무전대 산하 부대다.


결국에는 1990년 9월 육군의 AIU, 해군의 UDU, 공군의 AISU 등 육·해·공군 정보부대를 통합한 국군정보사령부로 개편됐다. 그러다 1999년 3월 국방부 직할인 국방정보본부가 설치되면서 그 예하에 정보사령부와 777사령부 등이 편입됐다. 이 때 국군정보사령부에서 정보사령부로 명칭이 변경됐다.


정보사령부의 주 업무는 해외 첩보 및 기밀업무로 해외정보 분야에서도 군사 및 안보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력한다. 전 세계 모든 군사집단을 상대로 전략과 전술, 무기, 장비, 기술 등은 물론 관련 인프라와 경제 상황 등에 관한 정보 수집과 분석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신호정보 제외 모든 출처 군사정보 수집

국방정보본부의 또 다른 예하 부대인 777사령부가 담당하는 신호정보를 제외한 모든 출처의 군사정보를 모조리 수집하고 분석하는 부대다. 무엇보다 휴민트와 특수 정보의 수집을 위해 스파이 업무를 수행하는 사령부 내 비밀공작단 등 예하에 여러 특수부대를 포함해 곳곳에 지부를 두고 북·중·러 뿐만 아니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군사 분쟁지역까지 전세계 각지에서 암암리에 활동한다.


정보사 산하에 대규모 수집·분석 부서를 보유한 것을 비롯해 국군이 관리하는 방대한 양의 정보수집 자산 및 부대와 연결돼 있기에 정보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분야에 있어 가장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무 자체가 과거 북파공작대 시절부터 매우 음지 영역인 이유로 비밀스럽고 민감한 조직이다. 자체 홈페이지마저 없고 채용 또한 모두 비밀리에 이뤄진다.


대북 관련 정보(첩보) 능력은 단연코 세계 최고 수준일 만큼 임무 수행 역량은 매우 뛰어나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 내전 당시 파견돼 전쟁터 한복판에서 첩보를 수집하고 모가디슈 주재 북한 대사관의 금고를 통째로 가져오기도 했다. 이 같은 극비 업무 때문에 영관급 공작장교가 중국에서의 첩보 임무 도중 위장 사무소에서 타국 요원들에게 습격받아 혈흔이 낭자한 전투 끝에 납치돼 고문당하거나 임무 중 순직하는 등 모든 것이 비밀스러운 조직이다.


국가정보원과 국군방첩사령부, 경찰청 정보국 및 외사국·보안국, 검찰청 공공수사부(옛 공안부)와 같은 국내 정보기관들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로 협업을 하고 있다. 공군 소속의 제28비행전대나 각 육해공 예하의 정보단까지 업무적으로 연계가 굉장히 긴밀하다. 그중에서도 국가정보원과는 업무 뿐만 아니라 인사 등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된 운명공동체의 관계로 알려졌다.


사령부 내 공작대에서 활동하는 모든 것이 극비인 블랙요원들의 경우엔 공작원 혹은 공작관(Agent Handler)이라고 불린다. 현장에서 공작원(또는 공작관)으로 뛰는 최고 직급은 대령으로 팀장이라고 불린다.


현장에서는 보고 문건을 국내로 보내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만약 도청당하면 적국 방첩기관에 도청된 보고문건을 증거로 잡혀 공작관원 모두 몰살당할 위험이 높고, 막대한 돈을 들여 구축한 현지 정보망이 일순간에 붕괴될 위험성 높기 때문이다. 국정원처럼 현장에서는 평문처럼 위장된 암호화 단문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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