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부담에 만들수록 손해"…韓철강, 中·日 저가공세에도 '가격 인상'

포스코·현대제철 영업익 수직하락
철광석 시세까지 오르면 적자 위기
조선업계와 후판 가격협상 난항
7월 인상했던 철근, 하락세 전환
일각선 "철강재 가격 지속 어려워"

제철소 근로자들이 용광로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 철강사들의 제품 판매가 인상은 일종의 ‘극약 처방’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 저가 물량 공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국내 철강사만 가격 역주행에 나선 셈이기 때문이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산업용 전기료를 올리자마자 환율 쇼크까지 터져 생산원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았다”며 “현재 환율에서는 차라리 공장을 닫는 게 더 이익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국산 철강 제품 가격은 중국과 일본의 공세 속에 인하 행진을 이어왔다. 후공정을 거쳐 자동차용 강판이나 건축자재로 쓰이는 열연 강판의 유통가는 지난해 초 약 105만 원에 거래됐으나 최근 81만 원까지 떨어졌다. 후판 역시 이 기간 115만 원에서 91만 원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열연과 후판을 주력 제품으로 판매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영업이익률도 수직 추락했다. 포스코는 2022년과 2023년만 해도 5% 이상의 양호한 수익률을 보였지만 올해 3분기에는 2%대까지 하락했다. 현대제철도 2022년 6%에 육박하던 영업이익률이 올 3분기에는 1% 이하까지 내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철강사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엄청난 비용 부담까지 안게 됐다. 최근 국제 철광석 시세는 10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내 철강사들은 불과 2달 사이에 1300원대 초반에서 1450원까지 급등한 환율에 따라 원료비 부담이 10% 이상 늘어났다. 고로에서 생산되는 열연과 후판은 전기로 생산품 대비 감산도 어려워 제철사들은 당장의 폭등한 원료 가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업계에서 사실상 판매 가격을 올리는 것 말고는 사업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보는 이유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철강사들의 수익성이 지난해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 원재료 가격까지 상승하면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생산을 멈출 수 없는 고로사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손해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가격 인상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범용 제품인 열연과 후판 가격이 내년 초부터 인상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다른 산업계와의 가격 협상에 대한 진통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열연과 후판은 그 자체로도 사용되지만 후공정 과정을 통해 산업 전반에 사용되고 있다.



제철소에서 생산되고 있는 후판

특히 이미 장기화된 조선 업계와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은 난항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 업계와 조선 업계는 9월부터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환율 여파 이전에도 철강사는 이미 업황 악화로 후판 가격을 더 이상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조선 업계는 국산 후판보다 톤당 10만~20만 원 저렴한 중국산 후판 가격을 근거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조선사들 역시 선박 원가에서 후판이 약 20% 차지하는 만큼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또한 열연을 원재료로 사용해 철근, 컬러 강판 등을 생산하는 제강사들 입장에서도 원가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제품 인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철강사들은 7월 수익성 급락에 대응하기 위해 철근 가격을 톤당 약 75만 원 선으로 일괄 인상한 바 있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배수진에 9월까지 철근 가격은 톤당 80만 원대로 반짝 상승했으나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현재는 톤당 67만 원까지 내려온 상태다.


철강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제철사들이 지속적으로 철강재 가격을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후방 산업 수요 및 저가 수입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여부 등의 상황을 종합해 가격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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