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보낸 서류를 수령치 않으면서 탄핵심판이 ‘공전’ 기미를 보이고 있다. 헌재가 송달 간주로 판단하면 변론준비기일 등을 진행할 수 있지만, 반대라면 향후 절차가 늦춰질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구성이 늦어지면서, 오는 25일로 예정된 이른바 ‘성탄절’ 소환도 실제 이뤄질 지 미지수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탄핵심판은 물론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까지도 안갯속에 빠지는 모습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헌재가 16~20일 순차적으로 보낸 탄핵심판 접수통지서와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 서류를 접수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첫 송달 시도 이후 일주일가량이 지났으나 전달되지 못했다. 관저의 경우 경호처의 ‘수취 거절’이, 대통령실에서는 ‘수취인(윤 대통령) 부재’가 이유다. 앞서 두 차례 대통령 탄핵에서는 없었던 서류 미송달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셈.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12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 서류가 송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같은 해 3월 17일에는 대리인단의 소송위임장과 의견서가 제출됐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2016년 12월 9일 탄핵안이 가결되고 약 1시간 만에 청와대 비서실을 통해 송달을 끝냈다. 이후 7일 뒤인 16일 소송위임장과 답변서를 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재는 청구서를 접수한 때에는 등본을 피청구인에게 송달해야 한다. 다만 수령을 거부하더라도 공시송달·발송송달 등의 방법을 통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방법도 있다. 답변서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강제 조항은 아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대리인을 늦게 선임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경우 27일 예정된 변론준비기일이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절차적 흠결이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탓에 헌재가 가급적 신중하게 관련 절차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는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때문에 헌재가 재판관 회의를 통해 송달 간주로 결정할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고, 출석을 안 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선택”이라며 “불출석하더라도 향후 재판은 그대로 진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법에서는 ‘당사자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다시 기일을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다시 정한 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그대로 심리를 진행한다.
검·경·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연이은 소환 조사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윤 대통령에 대한 실제 소환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조수사본부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윤 대통령의 통화 내역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다만 해당 통화 내용은 비화폰(보안폰·보안 처리된 전화)가 아닌 일반 휴대전화기의 통화내용으로 전해졌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최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을 비공개 소환 조사했다. 경찰 특별수사단은 최근 최상목 경제부총리 측으로부터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의 지시가 담긴 A4용지 한 장을 제출받았다. 문서에는 국회 운영비 중단 등 헌법기관인 국회 기능을 마비하려 한 정황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수처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도 같은 날 문상호 정보사령관을 구속 후 처음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윤 대통령이 25일 실제 출석해 조사를 받은 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란 지적이 나온다. 소환 조사에 대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아직 변호인단 구성도 완료치 못했다고 알려진 탓이다.
변호인단 합류가 유력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이날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아직 맡지 않았다”며 “(변호인단 구성은) 논의 중으로 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구성에 관여하는 석동현 변호사도 해당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답변드릴 입장에 있지 않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