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에게 공짜 요트 여행 등 호화로운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던 클래런스 토머스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 30년간 수백만 달러 어치(수십 억원)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21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상원 법사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개월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는 공화당 후원자인 텍사스의 억만장자 할런 크로가 2021년 제공한 뉴욕행 항공편과 요트 여행 등이 새로 포함됐다. 앞서 폭로 보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보고서는 “토머스 대법관이 받은 선물의 수와 가치, 사치스러움이 현대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또 토머스 대법관이 2004년 에이브러햄 링컨 흉상 등을 받은 사실이 언론 보도로 공개된 이후 판사들의 선물 수수 사실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연방법을 어겼다고 밝혔다.
앞서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는 토머스 대법관이 크로를 비롯한 지인들로부터 바하마 요트 크루즈, 자가용 비행기, 헬리콥터와 호화 리조트, 스포츠 경기의 VIP 관람석 등을 제공 받았다고 폭로했다. 일련의 보도로 대법관들의 도덕성 논란이 촉발되면서 이번 법사위 조사가 이뤄졌다. 다만 공화당 의원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법사위 보고서는 보수 성향인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2008년 헤지펀드 운영자인 억만장자 폴 싱어 등으로부터 하루 1000달러(약 145만 원) 상당의 알래스카 낚시 여행을 제공 받은 후 ‘개인적 호의 제공’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예외 조항을 악용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2021년 1월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불복 의회 폭동 등 관련 사건과 이해 충돌이 있어 사건을 회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대법관의 경우 그의 아내인 지니 토머스가 트럼프 당선인의 2020년 대선 불복 운동에 가담했다는 점도 이해 충돌의 사유로 꼽혔다.
법사위는 미국 사법부의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 사법행정기구인 ‘사법회의’가 지난 9월 규정을 바꿔 개인이 아닌 법인에 받은 선물이나 향응 등은 신고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줌으로써 사법 윤리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딕 더빈(민주·일리노이) 상원 법사위원장은 “수집한 정보를 통해 대법원이 스스로 초래한 윤리적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억만장자 아첨꾼들의 손아귀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조사 결과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의 친구인 마크 파올레타 변호사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토머스 대법관과 얼리토 대법관을 겨냥한 표적 조사였다고 주장하며 “조사는 윤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법원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