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계엄과 탄핵 사태 후폭풍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려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지만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더 격화하고 있다. 협의체 참여 주체부터 의제, 운영 방식까지 여야는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첫 만남조차 일정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데드라인’까지 거론하며 12·3 내란 특검법 공포를 압박하자 여당은 “국정 초토화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해 계엄과 탄핵 이후에도 정국 불안정성은 높아지게 됐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한 권한대행을 향해 “늦어도 24일까지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와 특검법 공포가 이뤄지지 않으면 즉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검법 공포를 지체하는 것은 내란 가담자들에게 증거인멸 시간을 벌어주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증폭시키는 반국가적, 반민주적 행위”라며 “만약 (특검 공포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연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야당 주도로 통과시킨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한은 다음 달 1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특검을 공포하라고 한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한 권한대행이 이미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서 특검법마저 거부권을 행사하면 지체 없이 탄핵 소추 절차를 밟겠다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상설특검은 거부권 행사가 불가능한 만큼 특검 추천 절차를 바로 이행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이날 한 권한대행의 탄핵소추안을 공개하며 민주당의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조국혁신당이 탄핵안에 적시한 한 권한대행의 탄핵 사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방관 및 동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위헌·위법한 권력 행사 발표로 국헌 문란’ 등이다.
국민의힘은 “국정과 여당을 마비시키겠다는 야당의 속셈”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야당 추진 특검법을 가리켜 “대통령 탄핵 인용 시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 탄압성 특검법”이라며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으로, 위헌적 요소가 명백함에도 거부권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한 권한대행의 탄핵을 압박하는 데 대해서는 “민주당이 겁박 탄핵을 자행하는 것은 이재명 대표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탐욕임을 자백하는 것”이라며 “아전인수적 겁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한 권한대행 탄핵을 놓고 신경전이 고조되면서 여야정 협의체 구성과 출범도 난항을 겪고 있다. 당장 협의체 참여 주체를 놓고 여야 간 기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여야 모두 협의체에 우원식 국회의장과 한 권한대행, 권 권한대행이 참여한다는 부분에는 이의가 없지만 야당 측 참여 주체를 놓고 국민의힘은 박 원내대표가, 민주당은 이 대표가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가적 비상사태를 초래한 국난 상태에서 의장과 원내대표 간 (국정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격이 안 맞는다”고 밝히자 권 권한대행은 곧바로 “민주당은 아무런 응답이 없는 채 정치적 공세만 펼친다”고 맞받아쳤다. 앞서 이 대표와 우 의장은 여야정 협의체 출범을 각각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의장이 제안한 협의체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야당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여야정 협의체가 논의할 의제를 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공석인 국방부·행정안전부 장관 임명 등을 우선 논의할 의제로 요구하지만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과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23일부터 내년 1월 초까지 비상행동에 돌입해 한 권한대행과 여당을 더 압박할 계획이다. 국회 상임위원회 현안 질의와 본회의를 최대한 가동해 비상계엄 사태의 불법성을 부각하며 여론전에 총력을 쏟는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