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입장 돼보니…더욱 고마워” 감사편지 쓴 외과의사

송교영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20일 진료실에서 위암 완치 환자 위한 기념식 열어

송교영(오른쪽)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20일 진료실에서 위암 수술 후 5년을 맞은 환자를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더 건강하고 기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랍니다. "


지난 20일 위암 수술 대가인 송교영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의 진료실에서 조촐한 기념식이 열렸다. 위암 수술 후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아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의학적으로 성인 환자는 고형암 수술 후 5년간 재발없이 생존했을 때 완치 판정을 내린다. 송 교수는 재발 두려움에 시달리며 힘든 여정을 견뎌낸 환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수술 후 5년이 됐을 때 진료실에서 기념식을 열고 있다. 수술 후 5년을 맞은 환자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고맙다는 감사인사도 전한다.


이날 기념식에서 송 교수는 "살면서 암이라는 극강의 상대를 만나는 경험은 무섭고, 화나고, 슬프고, 억울한 일"이라고 운을 뗐다. '환자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이라는 제목의 감사글을 통해 그는 "저 역시 몸이 아파본 의사로 가벼운 감기도 아니고 암이라는 중한 병에 걸리고 나서 이겨내는 환자자분들과 가족들을 보면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이 큰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고 했다.


진료실에 마주앉아 위암이 생겼다고 전하는 순간 대다수 환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을 숱하게 겪다보니 환자의 병 자체만 파고드는 게 아니라 환자가 무엇을 느끼고 의료진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를 고민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2년 여전 유튜브 채널 '가톨릭 콘텐츠의 모든 것'에 출연해 "위에 암 전단계인 선종이 생겨 내시경 절제술을 받고, 관상동맥이 막혀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환자들에게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계기였다. 이번 행사 역시 '환자의 마음에도 귀를 기울이는 의사'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기획하게 됐다는 게 송 교수의 고백이다.


그는 기념식에서 "의사로 만나는 이들의 사연들은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그저 직업이고 일상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덤덤해지기 쉽다"며 "수술을 하고 검사를 하는 것은 의료진의 5%의 역할이지만 근본적으로 병을 이겨내는 것은 95%의 환자의 노력이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잘 이겨내 주셔서 고맙다"고 전했다.



다음은 위암 완치 환자를 위한 송 교수의 감사글 전문.



환자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살면서 암이라는 극강의 상대를 만나는 경험은 그야말로 무섭고, 화나고, 슬프고, 억울한 일입니다. 적을 이겨내기 위해 내 몸의 일부를 파괴하는 일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의사로 만나는 이들의 사연들은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그저 직업이고 일상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덤덤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가운데 긴 싸움에서 승리하고 기뻐하시는 제 앞의 환자분들을 보면 그래도 제가 해야할 일이 있고 그것이 큰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암과의 싸움에서 5년이라는 시간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위암은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재발률이 극히 낮다는 사실에서 “5년생존률=생존률”(5년간 잘 살아 있으면 재발없이잘 산다.)의 공식으로 설명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면서 앞으로 최소 5년간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잘 끝냈다고 해도 정기검진 때 마다 시험 통과를 기대하는 수험생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5년의 시험을 잘 끝낸 분들과 두 세평의 작은 진료실 공간에서 갖는 조그만 기념식은 이제 수술을 받는 환자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오늘 수술이 결정된 젊은 환자분이“열심히 치료받고 꼭 교수님과 기념사진을 찍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말씀해 주십니다.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 곧 5년이 될 겁니다.”라고 답해드렸지요.


그렇게 오늘도 몇 분의 환자와 가족들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쁜 날을 함께 축하했습니다. 어떤 분은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오셨고, 어떤 신사분은 제대로 정장을 입고 오셨습니다. 환자분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충분히 축하받고 기뻐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을 수도 있으나 아주 긴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음식조절을 잘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고, 심한 덤핑으로 쓰러지기도 하며, 검사 결과가 이상하다며 PET이니 뭐니 하는 검사를 받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을 잘 조절 못했다고 주치의에게 혼나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불안으로 집안 식구들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슬프기도 하지요.


암치료 후 경과는 결국 몸의 면역상태에 의해 좌우됩니다. 면역능의 감소는 재발과 직결될 수 있어서 영양상태가 나빠지거나 근육량의 감소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잘 먹고 체중이 늘고, 열심히 근육운동을 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일부 환자분들은 정기검진을 위해 멀리 제주도부터 부산에서, 광주에서, 머나먼 시골에서 새벽부터 4-5시간을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찾아와야 하는 수고를 끊임없이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낸 5년입니다. 그 피와 땀을 닦아주고 축하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술을 하고 검사를 하는 것은 의료진의 5%의 역할이지만 근본적으로 병을 이겨내는 것은 95%의 환자의 노력입니다.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더 건강하고 기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잘 이겨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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