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이 세 차례 탄핵 관련 문서 수취를 거부한 데 대해 23일 ‘송달 간주’를 내린 배경에는 ‘탄핵 심판 절차가 지체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탄핵 관련 문서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향후 변론 준비 기일 등 절차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 측도 “수사보다 탄핵 심판을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적극 대응 의사를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 측이 여전히 변호인단 구성을 완료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어 과정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헌재가 이날 탄핵 관련 문서에 대한 즉각 송달 효력을 결정하면서 27일 첫 변론 준비 기일은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변론 준비 기일은 양측이 향후 심리 내용을 검토하고 일정을 논의하는 자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첫 심리 절차조차도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이 제출 기한을 하루 남기고도 헌재가 요구한 12·3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 회의록과 계엄 포고령 1호 등의 문서를 단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법적 입장을 대변하는 답변서도 준비 기일인 27일까지 제출될지 미지수다.
윤 대통령은 이날 헌재의 송달 효력 발생 결정이 있기 전까지 탄핵 문서 수취 거부 입장을 고수해왔다. 앞서 헌재는 16·18·19일 총 3차례에 걸쳐 탄핵 접수 통지서와 준비 절차 기일 통지서 및 출석요구서 등을 송달했다. 하지만 이 모두 수취 거절 혹은 수취인 부재로 모두 반송 처리됐다. 헌재 직원들이 직접 관저를 방문했지만 경호원 직원으로부터 수취를 거부당했다. 헌재는 대통령의 탄핵 문서 수취 거부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탄핵 심리에 돌입하기도 전에 절차 지연 문제에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이날 열린 공식 브리핑에서 이진 헌재 공보관은 변호인 선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론 준비 기일이 진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변론 준비 기일은 그대로 진행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수명재판관들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는 당사자와 대리인이 모두 출석하지 않고 문서까지 제대로 제출되지 않을 경우 수명재판관들이 기일 연기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8일 열린 이창수 중앙지검장의 탄핵 심판 첫 변론 준비 기일도 대리인 선임이 이뤄지지 않고 당사자 모두가 참석하지 않아 약 3분 만에 종료됐다.
윤 대통령이 절차 지연을 목적으로 변호인 선임을 계속 미룰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 공보관은 “당사자가 대리인을 선임하지 않는 경우 국선 대리인을 선정할 수 있는데 대통령 탄핵 사건에 적용되는지에 관련해서는 재판관들이 따로 판단해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의도적으로 윤 대통령이 서류 제출을 미루는 경우에도 헌재가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27일 예정된 변론 준비 기일이 지연될 가능성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탄핵 피청구인의 기본적인 입장조차 제출되지 않은 상황에다가 탄핵 심판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데 당사자와 대리인도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일이 열리더라도 시간 낭비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헌법재판관 선임 문제도 남았다. 이는 윤 대통령의 임시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는 석동현 변호사의 발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탄핵 심판과 관련해) 절대로 시간을 끌겠다거나 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6인 헌재 체제에서 탄핵 심판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27일 내 헌재에 제출해야 할 답변서와 관련해서는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지 10일도 안 됐고 간단한 내용이 아니다”라며 “변호인과 윤 대통령 간 충분한 소통을 거쳐 대응책이 구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이날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마은혁·정계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국민의힘 몫으로 추천받은 조한창 후보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한 뒤 곧바로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하고 이르면 26일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추천한 마·정 후보자에 대해 “심각한 이념적 편향성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개인적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판결에 드러냈다”며 추천 철회와 선출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