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서학 개미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이 무려 전달 대비 15배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코스피 시장의 거래 대금은 약 1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올해 들어 미국 주식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증권사들은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 앞다퉈 시장 선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이달 3일부터 20일까지 순매수한 미국 주식 규모는 12억 8765만 달러(약 1조 8652억 원)로 지난달 전체 순매수액 12억 7937만 달러(1조 8546억 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11월 같은 기간 순매수액인 8618만 달러(약 1248억 원)와 비교했을 때는 무려 15배 가까이 폭증했다.
서학 개미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미국 주식을 7억 6836만 달러(약 1조 1148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당시 2차전지주의 활황에 힘입어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각각 3.91%, 4.16% 상승한 효과였다.
서학 개미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테슬라(5억 9075만 달러, 약 8561억 원), 팔란티어(3억 9847만 달러, 5774억 원), ‘뱅가드 SP 500’ 상장지수펀드(ETF)(2억 9935만 달러, 4338억 원)가 이름을 올렸다. 뱅가드 SP 500 ETF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사실상 전체 순매수액의 대다수를 상위 3개 종목이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2년 간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첫 단계로 데이터센터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 구축이 빠르게 진행됐다면 이제는 구축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AI 기술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SW)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전기차 제조업체인 테슬라는 이달 초 업그레이드된 FSD(Full Self-Driving) 시스템을 선보이며 SW관련 종목으로서의 매력도 더하고 있다.
개인들의 해외 투자 규모가 커지자, 증권사들은 앞다퉈 현지 법인 설립에 나설 태세다. 키움증권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미국 법인을 직접 설립하거나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서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지금은 해외 주식을 중개하려면 칸토나 모건스탠리 같은 현지 브로커 증권사가 있어야 하는데,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취득하면 이를 통하지 않고 미국 주식 거래를 중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토스증권도 일찌감치 미국 현지 진출을 선언했다. 토스증권은 올 8월 미국 현지법인으로 자회사 토스증권 아메리카와 손자회사 TSAF(TSA Financial LLC)를 설립했다. 토스증권도 내년까지 브로커딜러 라이선스를 취득한다는 목표다.
이에 반해 이달 3~20일 코스피 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9조 6381억 원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 10조 5047억 원 대비 무려 9000억 원가량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계엄 사태가 터져 코스피는 3.84% 추락했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7261억 원을, 외국인은 2조 7773억 원어치를 처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