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탄소중립과 기후대응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발전부문과 전기차 등 운송부문 탈탄소화에서 산업 부문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문 탈탄소화는 무엇보다 생산공정에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산업부문 탈탄소화는 제조업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2050년까지 필요 전력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RE100 가입(2024년 12월 기준) 글로벌 기업은 애플과 구글·메타(페이스북) 등 총 435개에 달한다. 현재 RE100 재생에너지 개념은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등으로 한정하고 원전과 천연가스는 제외한다.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는 기업경영 혁신마저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투자자를 위한 기업정보 공시는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등 재무제표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코프 1(사업장에서 직접 배출되는 탄소), 스코프 2(전기, 스팀 등 에너지를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되는 탄소), 스코프3(협력업체 등 공급망 전체 간접배출되는 탄소) 범위의 탄소배출 정보 공시가 의무화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간 무역과 통상 질서에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인위적 보조금과 값싼 전기료로 생산한 수출품에 대응해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기존 무역 갈등의 형태였다면, 앞으로는 선진국이 개도국의 탄소다배출 수출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무역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는 유럽연합(EU)이다.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철강과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기, 수소 등 총 6개 품목에 대해 2026년부터 탄소 배출량에 따라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미국도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수입품 탄소규제를 통해 저탄소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판 CBAM이라 할 수 있는 청정경쟁법(CCA)은 정유와 석유화학·철강·유리·제지 등 에너지 집약 산업군인 12개 수입 품목에 온실가스 배출 1톤 당 55달러를 부과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며 적용 시점은 2025년 1월 부터다.
우리나라의 경우 CCA에 따라 향후 10년간 총 2조 7000억 원의 탄소세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은 제품 전과정 탄소 배출 가운데 전기 사용으로 인한 배출이 70%를 차지하는 만큼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이 급선무다. 우리나라가 미국·EU의 제품 탄소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