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자사주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인적 분할 시 자사주 배정을 금지했다. 자사주 보유·처분 공시도 강화해 자사주를 본래 목적인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24일 금융위원회는 국무회의에서 상장법인 자사주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돼 이달 31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 제한, 공시 강화, 자사주 취득·처분 과정에서의 규제 차익 해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주주환원이 아닌 대주주 지배력 수단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자사주는 의결권·배당권·신주인수권 등 거의 모든 주주권이 정지되지만 인적 분할에서만 신주 배정이 이뤄지면서 분할 회사에 대해서는 대주주 지배권을 쉽게 강화할 수 있다. 미국·일본 등 다른 주요국은 이를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법령·판례가 명확하지 않았던 만큼 개정 시행령을 통해 신주 배정을 명확하게 금지했다. 같은 취지에서 상장법인이 다른 법인과 합병하는 경우에도 소멸 법인이 보유한 자사주에 대해 신주 배정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개정안 시행에 따라 상장사는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 총수의 5% 이상일 경우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추가 취득 또는 소각 등 향후 처리 계획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 공시해야 한다. 모든 상장법인은 자사주를 처분할 때 처분 목적, 처분 상대방 및 선정 사유, 예상되는 주식 가치 희석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자사주를 신탁으로 취득할 경우 직접 취득에 비해 규제가 완화돼 이를 악용할 수 있는 길도 막았다. 신탁으로 자사주를 취득하더라도 당초 계획·공시된 매입 금액보다 적으면 사유서를 내야 한다.
올해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 추진되면서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소각 규모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자사주 취득 규모는 18조 7000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취득액(8조 2000억 원) 대비 128% 증가했다. 자사주 소각 규모도 4조 8000억 원에서 13조 9000억 원으로 189% 늘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주권 상장법인의 자사주가 대주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이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래 취지대로 운용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추가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지속 검토·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