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까지 치솟고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지속하면서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탄핵 국면 장기화 같은 정치 불안 요인도 겹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에 따른 당국의 부담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24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2조 9160억 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은 3일까지만 해도 4000억 원을 순매수했지만 비상계엄과 정국 혼란이 이어진 이후 14영업일 동안 3조 3160억 원을 넘게 팔아치우면서 주가 하락을 주도했다. 이날도 코스피 시장에서는 약 163억 원의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갔다.
국고채에서도 자금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전날까지 11조 9000억 원 규모의 3년·10년물 선물을 순매도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선포나 탄핵 소추와 같은 정치적 사건은 외국인투자가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은 지난달만 해도 15조 3000억 원가량을 순매수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 아래 시세차익을 노리고 선물을 대거 매수한 것이다. 국채금리가 떨어지면 국채 가격은 상승한다. 하지만 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이달 2일과 3일 이틀 동안 국고채 선물을 2조 8000억 원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4일부터 23일까지 14조 7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국고채 선물 거래의 경우 청산 시점에 차액만 거래하기 때문에 순매도액만큼 자금 이탈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시차를 두고 현물 거래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채권 선물을 매도한다는 것은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고채 금리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날 연 2.626%로 마감했다. 계엄 사태 전인 2일(2.567%)보다 0.059%포인트 오른 수치다. 국고채 10년물 금리 역시 같은 기간 2.697%에서 2.876%까지 올랐다.
이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한국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비상계엄 사태 전 0.34%포인트에서 현재 0.37%포인트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CDS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국가 파산 가능성이 크다.
고공비행 중인 원·달러 환율도 한몫한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4.4원 오른 1456.4원으로 연고점을 경신했다. 나흘째 1450원대다. 환율은 전날보다 0.5원 내린 1451.5원으로 출발했지만 이내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후 상승 폭을 키워 오후 3시 20분께 1457.4원까지 오르며 1460원 선까지 위협하기도 했다.
원화 약세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에 투자하는 매력을 떨어뜨려 한국에서 탈출하는 요인이 된다. 이는 달러 수요를 늘려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다시 원화 약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원화 약세→한국 주식·채권 매도→원화 약세 가중’이 나타나는 셈이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 실현 시 달러로 가져가기 때문에 원화가 약세면 주식이나 채권 투자로 차익을 봤어도 수익의 상당 부분을 환율에서 까먹게 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년도 금리 인하 횟수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고 있다”며 “그 분위기에 맞춰 한국 국채금리도 상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거론되는 것도 국채 선물 매도세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내년 추경 편성 시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국채 가격은 하락(금리 상승)해 선물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도를 선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