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계엄 준비 과정에서 북한의 대남 도발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이 불명예 제대한 뒤 무속인으로 활동하며 거주한 경기 안산시의 한 점집에서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가 적힌 수첩을 압수했다. ‘계엄 수첩’에는 정치인·판사·언론인·노조 등을 ‘수거(체포) 대상’으로 지칭한 메모도 있었고 ‘국회 봉쇄’ ‘사살’ 등의 표현도 들어 있었다. 이 같은 메모가 실제 계획과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성급 군 간부를 지낸 인사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다.
야당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헌법 77조의 비상계엄 발동 요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연출하기 위해 ‘북풍 공작’을 기획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형법상 내란죄뿐 아니라 외환죄까지 적용할 수 있는 중대 범죄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24일 노 전 사령관을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 송치한 것을 계기로 계엄 사태 관련자들의 외환죄 적용 여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이번 계엄을 주도해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12월 3일 계엄 실행’을 건의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군 성추행 사건으로 제대해 민간인 신분인 노 전 사령관이 불법적인 군사작전을 기획해 군 수뇌부에 건의한 것이 계엄 사태 촉발의 계기가 됐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 안보 체계를 흔드는 사안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헌법가치와 군의 정치 개입 금지 등은 어떤 정권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 메모와 같은 발상과 기획이 결코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사 당국은 노 전 사령관 수첩 메모의 내용과 계엄 모의·실행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엄중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군도 국토방위 및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 등의 사명과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저버리지 않도록 기강과 지휘 체계를 다잡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