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값비싼 냉매를 사용하지 않고도 초저온을 달성할 수 있는 소형 냉각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방사선과 같은 미세한 에너지를 검출하는 우주용 센서나 초전도 큐비트(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를 구현하는 양자컴퓨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온도를 극저온으로 낮춰 열적 교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절대온도(영하 273도)’에 가까운 단열 탈자 냉동기와 흡착식 냉동기를 통합함으로써 난제를 풀어냈다.
25일 과학계에 따르면 정상권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최근 이 같은 통합 구조를 통해 절대온도 0.3켈빈(K, 0.3K는 영하 272.85도)의 냉각 온도를 달성했다. 흡착식 냉동은 활성탄과 같은 고체 흡착제 표면에 기체가 달라붙는 흡착 현상을 이용해 냉각 효과를 얻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초저온 냉각을 위해 동위원소인 헬륨-3과 헬륨-4의 혼합물을 이용한 희석식 냉동기가 사용돼왔다.
희석식 냉동기는 헬륨-3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열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한 냉각 방식이다. 하지만 희석식 냉동기에 사용되는 헬륨-3은 값이 매우 비싸고 밀도도 낮다는 단점이 있었다. 밀도가 매우 낮은 헬륨-3이 순환하는 시스템에서는 상온부에 거대한 기체 순환 장치가 요구돼 시스템의 크기가 거대해진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연구팀은 값이 비싼 헬륨-3을 냉매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소형의 크기로 초저온을 달성할 수 있는 냉각장치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기체 압축과 팽창을 통한 기존 냉각 방식 대신 자성 물질의 자기적 압축과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초전도 자석으로 기존의 대형 기체 순환 장치를 대체해 시스템을 소형화했다.
다만 단열 탈자 냉동기는 작동 온도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4K(영하 269.15도) 냉각 온도를 구현할 수 있는 상용 극저온 냉동기와 액체 헬륨-4의 증발 냉각 효과를 이용한 흡착식 냉동기를 통합한 구조를 채택했다. 여기에 국산 소재로 제작한 초전도 자석으로 단열 탈자 냉동기를 구동해 절대온도를 구현했다.
정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통합형 단열 탈자 냉동기’는 소형화와 단순성을 모두 갖춘 혁신적인 초저온 냉각 방식으로 다양한 양자 소자 냉각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더 낮은 온도를 구현할 수 있는 자성 물질을 선택한다면 기존 희석식 냉동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연구 결과는 내년 5월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주관하는 우주 극저온 워크숍(SCW)에서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