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 세계 주요 증시가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것과 달리 한국 증시는 되레 뒷걸음질하고 있다. 상반기 인공지능(AI) 랠리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추진으로 상승 탄력을 받았던 한국 증시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와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의 여파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12·3 계엄 사태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확대되면서 외국인과 개인투자자의 이탈마저 가속화되고 있다. 고점 논란이 끊이지 않는 미국 증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예고에 급락한 후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반쪽짜리’ 산타 랠리를 즐겼지만 한국은 기업 실적 둔화와 고환율 현상이 지속돼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내년 1월 트럼프 취임을 시작으로 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다양한 이슈들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나고 본격적인 경기 부양이 시작된다면 증시가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5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개월 새 나온 증권사 전망을 종합한 올 4분기 코스피 영업이익 추정치는 56조 8199억 원으로 한 달 만에 1.50% 감소했다. 특히 국내 증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9조 2193억 원)가 5%가량 줄어든 게 직격탄이 됐다. 이 외에도 SK하이닉스(-1.30%), 삼성바이오로직스(-1.27%), 셀트리온(-1.45%)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영업이익 추정치가 일제히 하락하면서 주요 기업들의 실적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적 우려는 국내 증시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4일까지 코스피지수는 214.76포인트(8.09%) 내렸다. 같은 기간 코스닥은 무려 21.52% 급락해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하는 아시아태평양 주가지수 87개 가운데 꼴찌에 올랐다. 특히 코스피와 코스닥은 올해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 연속 하락했다. 만약 두 지수가 이달에도 하락한 채 마감한다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하락한 것과 동률이 된다.
이미 코스피는 이달에도 0.63%(24일 기준) 하락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국내 증시가 반등할 수 있는 재료가 거의 안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내수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실제로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관세 부과, 전기차 의무화 폐지 등 1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히면서 대외적인 불확실성도 증폭되고 있다.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 우려로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 역시 이어지고 있다. 올 하반기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총 20조 8691억 원(24일 기준)을 순매도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지며 AI 랠리에서 벗어난 삼성전자를 18조 2989억 원어치나 팔아치운 점이 뼈아프다. 개인마저 미국 증시, 가상자산 등 국내 증시보다 수익률이 높은 시장으로 떠나면서 수급 기반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증시에 찾아온 산타 랠리가 내년 초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경계심 또한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연준이 매파적 분위기로 돌아선 만큼 증시를 밀어올릴 동력이 약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인프라스트럭처캐피털어드바이저스의 제이 햇필드 분석가는 “연말 랠리는 (있다고 해도) 그렇게 강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시장에 대해 중립적”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내년 한국 증시가 ‘상저하고’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 11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만큼 실질적인 효과는 내년 1분기 중반에나 나타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수 회복 기대감은 내년 하반기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대외 불확실성으로 성장주가 주식시장을 주도하기 어렵다”며 “정책 모멘텀, 배당 등 틈새 분야 공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