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비쟁점 민생 법안 110여 건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4일 회동에서 여야 간 쟁점이 없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여야가 처리하기로 한 법안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과 규제 근거를 담은 AI기본법 제정안, 예금자 보호 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높이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대부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상향하는 대부업법 개정안 등이다.
여야가 민생 법안 처리를 합의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작 시급한 반도체특별법이 대상에서 제외돼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근거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제외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특별법에서 주 52시간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자고 고집하고 있다. 대신 근로기준법에 주 52시간 예외를 허용하는 특례 규정을 두자고 주장한다. 반도체특별법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관이지만 근로기준법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룬다. 강성 노조 출신 의원들이 포진한 환노위에서 주 52시간 예외를 논의하자는 것은 이 조항을 사실상 무산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반도체 국가 대항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R&D)을 가로막는 일률적인 주 52시간제 족쇄를 풀어야 한다. 미국·대만 등 주요국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실은 밤낮없이 돌아가며 첨단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I 칩 선두 주자인 미국 엔비디아 연구원들은 새벽까지 일하고,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의 엔지니어들은 하루 24시간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반면 획일적인 주 52시간제에 발목이 잡힌 우리 기업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장비를 끄고 개발자들의 근무를 중단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최근 발표회에서 “주 52시간제는 반도체 전쟁을 하다가 갑자기 퇴근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오죽하면 삼성전자 임원들이 반도체특별법에 3년만이라도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포함시켜달라고 국회와 야당을 찾아다니면서 호소하겠는가. 우리가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거대 야당이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 반대를 접고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 협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