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석화 구조조정 속도 올려야

배상윤 경제부 기자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에서 막대한 무역적자를 감내한 미국은 2000년부터 2016년까지 5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잃었고 미국의 러스트벨트가 황폐화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무역 흑자국인데도 제조업이 러스트벨트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유무역으로 성장한 한국이 역설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정부도 뒤늦게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산업부는 최근 석유화학 산업의 사업 재편에 방점을 둔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석유화학 업종의 위기는 무사안일주의가 한몫했을 것이다. 업황이 좋을 때 고부가 가치 제품 전환이나 사업 재편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실기도 있었다. 중국산 공급 과잉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가장 강력한 관세로 불리는 상계관세를 부과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업계에 사업 재편 방향을 포함해 어젠다를 주도적으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많은 나라들이 쌓고 있는 보호 장벽의 핵심은 보조금 지급과 관세 부과다.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관료들이 업무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책임이 뒤따르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경쟁 산업국가들과 벌여야 하는 총성 없는 통상 전쟁에서 자유무역 기조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규칙 기반의 세계무역기구(WTO) 질서와 익숙한 산업정책과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정부는 신산업정책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 아울러 관세와 보조금을 통해 기간산업을 보호하는 강력한 보호 장벽을 쌓아야 한다.


제조업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다. 상대국의 보복이 두려워 상계관세 부과를 꺼리거나 사회적 저항을 의식해 위기 산업의 구조조정을 늦춘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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